18세 때 목발 짚고 김천→부산행
평균 4년 걸리는 수제화 기능, 하루 3시간 자며 1년 반 만에 익혀
덕천동서 구둣방 운영 34년차, 20여㎞ 떨어진 해운대구에서도 소문 듣고 손님들 찾아와
11년여 만에 작은 아파트 구입, ‘기초생활수급자 자격’ 스스로 반납
“북구장애입협회 이사로서, 앞으로도 형편 어려운 장애인 복지증진 위해 노력할 터”
![]() |
▲김정도(61)씨가 31일 자신의 평생일터인 부산 북구 덕천동로터리 인근 1.5평 남짓한 구둣방에서 구두를 수선하고 있다. |
[로컬세계 부산=글·사진 김의준 기자]기초생활수급자 출신인 구두수선공 42년 경력의 1급 지체장애인이 소재지 지자체로부터 ‘신발 개발·생산’ 분야의 ‘장인 인증’을 받았다.
화제의 주인공은 부산 북구 덕천동로터리 인근 도로변에서 작은 구둣방을 운영하는 김정도(61)씨.
김씨는 지난 30일 오후 북구 구청장 집무실에셔 실시된 ‘2021년 부산광역시 북구 장인 증서 수여식’에서 다른 분야의 3명과 함께 ‘신발 개발·생산’ 분야의 장인 인증을 받았다고 북구가 31일 밝혔다.
1960년 심심산골인 경북 금릉군(현 김천시) 남면에서 태어난 김씨는 세 살 되던 해 어느 날 온몸에 열이 나고 갑자기 다리를 못 쓰게 됐는데도 부모가 ‘곧 괜찮겠지…’하며 방치되다시피 하다가 뒤늦게 대구의 대형병원에 입원했으나 이미 치료시기를 놓친 뒤였다.
![]() |
▲김씨가 지난 30일 북구청 청장 집무실에서 열린 ‘2021년 부산광역시 북구 장인 증서 수여식’에서 ‘신발 개발·생산’ 분야의 장인 인증서를 수여받은 뒤 정명희(사진 왼쪽) 북구청장, 차남 도현(32, 오른쪽)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맞히지 않은 게 비운의 시작이었다.
겨우 세 살 때부터 스스로 걷지 못하는 신세가 됐지만, 김씨는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다.
목수가 아닌데도 손재주가 남달랐던 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은 김씨는 1급 지체장애인이 할 수 있는 직업이 구두제화공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18세 되던 해 목발을 짚은 채 혼자서 부산 중구 영주동 소재 한 건물 지하층에 입주해있던 1인 제화업체 ‘신어바’(대표 최성환·72)로 향했다. 당시 부산에 살던 누나(67) 지인의 소개로 수제 구두 제화업종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 때부터 김씨의 구두 기능 연마를 겸한 눈물겨운 인생 공부가 시작됐다. 10여평 남짓한 수제 구두공장 겸 숙소에서 최 사장과 단 둘이서 숙식을 한 곳에서 해결하며, 손가락 끝에 피가 마를 날이 없도록 구둣바늘을 놀리며 기능을 익혔다.
![]() |
▲부산 북구 ‘신발개발·생산’ 분야의 장인 인증서를 든 김정도씨. |
구두 만드는 기능만이 자신의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그는 월급 한 푼 없이 밥만 먹여주는데도 대만족이었다. 잠을 자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한창 젊은 때라 하루에 3시간 정도를 자며 사장이 가르쳐준 기술을 밤낮없이 익히고 또 익혔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수제구두 완제품 생산기술을 익히는데 보통 사람들은 4년 정도 걸리는 데, 김씨는 1년 반 만에 끝냈다.
최 사장도 열심히 하는 김군을 기특하게 여겨 성의껏 지도한 덕분이었다.
‘신어바’에서 2년을 근무한 김씨는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제화점 2곳으로 옮겨 8년 정도 근무했으나, 1987년 4월 다니던 ‘노들제화점’이 문을 닫으면서 오갈 데가 없어지자 눈앞이 캄캄했다.
1년 전 결혼한 터라 아내와 1살 된 첫아들이 있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김씨는 목발을 짚고 무조건 자신이 살던 관할 북구청 위민실(현재의 민원실)로 향했다.
“직장을 잃었습니다. 아내와 돌 지난 아이가 있는데 살 길이 막막합니다.”
이런 절박한 하소연을 들은 사람은 때마침 위민실에 배치된 지 며칠 되지 않은 손경현(70·전 북구청 주민복지과장, 신발 장인 추천자 )씨였다.
손씨는 “구두 제화 및 수선을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들은 뒤 비교적 유동인구가 많은 관내 덕천동로터리 인근에 위치한 대형건물 옆 도로변 모퉁이에 1.5평 규모의 구두방 박스(사진)를 구청 위민실 지원금으로 설치, 생계를 이어가도록 조치했다.
구청 측은 해당 부지가 사유지여서 주인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특유의 근면·성실함으로 이른 아침부터 구둣방에 나와 밤늦게까지 하루평균 12시간 이상을 일한 그는 11년여 만인 지난 98년 인근 화명동에 조그마한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하면서 영세민(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스스로 반납할 정도로 자립하는 데 성공했다.
![]() |
▲부산 북구 덕천동로터리 인근 이면도로변 모퉁이에 위치한 김정도씨의 평생일터인 구둣방 전경. |
아들 2명도 반듯하게 키워 장남은 대기업 회사원, 차남은 소방공무원으로 근무 중이다.
김씨는 현재 부산북구장애인협회 이사로서 다른 장애인들을 돕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달 김씨를 ‘신발 개발·생산’ 분야의 장인으로 북구청에 상신한 손씨는 “김정도씨는 42년간 익힌 구두 제화·수선공으로 가히 업계의 최고 수준에 올랐으며, 김씨가 주문받아 제작한 수제화를 신어본 지역주민들이 하나 같이 ‘디자인과 착용감이 좋다’며 미려한 그의 솜씨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고 있다. 20여㎞ 떨어진 해운대 등 타 구에서도 소문을 듣고 손님이 찾아올 정도다. 심지어 고객들이 인터넷에 ‘구두제작, 수선 잘 하는 업소’로 추천을 띄우기도 한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기술을 지닌 지역의 최고 장인임이 틀림없다”라는 요지로 장문의 추천서를 북구청에 전달했다.
수상 소감을 묻자 김씨는 “34년여 전인 1987년 4월 어느 날 북구청 위민실을 찾아가 ‘처자식과 살길이 막막하다’고 호소했던 그 날이 떠오른다”며 “제가 열여덟 청소년 시기에 부산에 와서 구두 기술을 익히고, 이런 큰 상을 받고 보니 사는 보람을 느끼며 앞으로 주변의 어려운 장애인들을 더 챙기고 지역발전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