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에 피해 있는 조정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참으로 한심했다. 화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만 가지고 연일 논의할 뿐 어떻게 싸우자는 건 없다. 청나라 병력 30만 대군이 포위하고 있는 이 조그만 남한산성 안에 갇힌 채로 적군이 항복을 요구하는데 아무런 대항 방법도 없으면서 항복은 안 된다고 하며 적군을 오랑캐라고 부르는데, 오랑캐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다. 적들이 강화 회담을 하려면 세자가 나오라고 했다는 것은, 화친은 이미 물 건너가고 적들이 지금 원하는 것은 항복이니 세자가 항복하러 나오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던져놓은 것이다. 그걸 조정 대신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냥 하기 좋고 입에 담기 좋은 말로 화친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그 힘 앞에는 벌벌 떨리면서도 적들을 오랑캐라 칭하는 것일 뿐이다. 소현세자는 그런 지금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읽고 있었다.
소현세자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드디어 자신이 결단을 내렸다. 이미 강화 협상하러 자신이 성을 나서서 적진으로 가겠다고 했으나, 지존의 대를 이어 지존이 되실 세자가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다는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다음과 같은 봉서를 당시 최고의 정치 및 군사 기관인 비국에 내렸다.
“우리는 산성에 갇혔으나마 먹고 자면서 목숨을 보존하지만, 백성들은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적군의 칼날 아래 유린당하며 목숨을 잃고 있다. 게다가 아군의 기세는 날로 추락하는데 적군의 기세는 높아만 간다. 나라의 운명이 이미 촌각을 다투고 있으니, 내가 기꺼이 나가서 적과 화친을 논할 것이다. 백성 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고, 나라 없는 세자가 무슨 소용이라는 말이냐? 그리고 행여 일이 잘못되어 내가 죽는다 해도 내게는 아우도 있고 아들도 있으니, 이 나라 종묘사직을 이어가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 내가 성을 나갈 것이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안 된다는 대답뿐이었고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다가 결국은 청나라의 최후 통첩을 받아들게 된다. 인조가 직접 나와서 항복하면 모를까 나머지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세자가 나오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세자가 대신 나가게 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세자를 보내겠다고 하니 청나라에서는 단호히 왕이 직접 나오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조정이라는 것이 갈피를 못 잡고, 세자가 직접 나가겠다고 할 때는 안 된다고 하다가 왕을 나오라고 하니까 세자가 가면 안 되냐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처신의 연속일 뿐이었다. 그렇게 또 며칠을 끌다가 결국은 인조가 직접 나가서 삼배구고두례라는 지상 최악의 치욕스러운 항복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난 일을 자꾸 따져봐야 의미 없는 일이겠지만, 처음에 왕제와 대신을 보내라고 할 때 속인 것부터 잘못된 일이다. 그리고 세자를 보내라고 할 때 세자가 가서 화친을 청했으면 인조가 굴욕을 치르는 일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을 하기보다는 대책도 없이 명분만 내세우며 티격태격하는 조정의 안일한 태도가 결국 최악의 사태로 몰고 간 것이다. 처음부터 싸움이 안 될 것을 알고 강화도로 도망치려다가 눈이 와서 남한산성으로 도망쳐 갇혔으면서도,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할 생각은 안 하고, 왕과 조정 신료들은 백성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지키는 남한산성 안에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논쟁만 벌였던 것이다.
인조가 비참하게 항복한 뒤에 소현세자와 훗날 효종이 되시는 동생 봉림대군을 볼모로 한다는 조약에 의해서, 소현세자는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끌려갔다. 그리고 아버지 인조가 처참하게 항복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소현세자는, 자신이 청나라에서 나약해 보인다면 저들이 자신은 물론 조선의 모든 군인과 백성들까지 나약하다고 무시할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용맹한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도착하자 당시 청나라 권력의 실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예친왕 도르곤과 용골대가 소현세자에게 진심으로 존경심을 표했다. 두 사람은 소현세자가 신료들이 만류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백성 없는 세자가 무슨 소용이냐고 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화친을 위해서 스스로 성을 나서겠다고 했던 사실을 알고 진심으로 소현세자를 존경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청나라와 명나라의 전황이나 기타 수집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정보를 접하면 면밀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명나라는 국운이 다했고 머지않아서 중원은 청나라 차지가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청나라 편에 서서 싸우는 것이 훗날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청나라가 출병할 때 자원해서 같이 출병했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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