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코하마 랜드마크 70층 건물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양현숙 양해숙 정고운 여가옥 김영애 이진희 (사진= 이승민 특파원) |
[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지난 19일, 한국인 1세 어머니들로 구성된 재일효정한국부인회(회장 여가옥) 도쿄 회원들이 2020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친목의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비록 적은 모임이 되었지만 요코하마 항구를 산책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사쿠라기초역(桜木町駅)에서 만나 시원한 바다바람을 맞으며 렌드마크 타워(70층), 아카렌가(赤レンガ倉庫), 크루즈선(大さん橋)을 구경하면서 갈매기 날으는 항구의 해변을 따라 걸었다. 바다와 잘 어울리게 조성된 야마시다공원(山下公園)엔 빨간 장미들이 만개해 있었고 분수대는 여름 인냥 새하얀 물줄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 |
▲유원지를 배경으로 |
야마시다공원 곁에는 중국촌(中華街)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이다. 점심 때가 되어 중국촌 식당에 들어가 동그란 식탁에 둘러앉았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서울 고향도 다양했다. 구경도 좋고 산책도 좋지만 식사시간은 더욱 즐거웠다. 가족처럼 다정하게 음식을 나누며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국 여인들의 애환(哀歡)을 들어보았다.
곤니치와(안녕하세요), 아리가토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밖에 모르고 일본에 왔지만 다음날부터 일했다. 아무리 바쁜 생활 속에서도 아들 딸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쳤다. 한국 어머니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애국심은 일본인들에게 감동적인 모범이 되었다.
![]() |
▲6각형 속에 6명이 모델처럼 |
먼저 부인회장 여가옥(呂佳玉)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고향은 경북 김천, 25년 전 일본에 와서 장남을 낳고 둘째를 낳으려다가 세 쌍둥이를 임신해서 갑자기 4명의 자녀를 둔 엄마가 되었다. 그 애들이 벌써 올해 대학을 졸업한다. 세 쌍둥이 중 첫째가 일본 방위성 관리직에 합격을 해서 기쁘다. 내년 4월부터 연수에 들어간다. 삼남은 대학원에 합격했다. 지진학을 전공하는데 지진이 많은 일본을 위해 일하겠단다. 어릴 때는 키운다고 힘들었지만 어느새 다 큰 것 같아서 참으로 대견스럽고 고맙다.”
큰 언니 김영애(金榮愛) 씨는 “남편 고향은 경북 영천이고 나의 고향은 충남 부여다. 남편의 일본 유학길을 따라 어린 아들 둘(3살, 1살)을 데리고 일본에 온 것이 지금까지 살고 있다. 처음 도쿄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어렸고 남편은 공부하고 생활비나 아이들 양육은 내 몫이었다. 일본에서 밤낮없이 일했다. 남편이 공부를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시작한 일본생활이 벌써 34년이나 되었다. 2000년과 2005년, 일본에서 한국요리책 2권을 출간했다. 그동안 한국요리교실을 운영해왔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지금은 개인지도 형식으로 2∼3명씩 집에서 요리교실과 한복체험교실을 하고 있다.”
![]() |
▲야마시다공원 앞에서 |
재일효정한국부인회 합창단 단장 정고운(鄭高云) 씨는 “전남 순천 출신, 27년 전, 한국에서 아들 하나를 낳고 다음해 일본에 와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더 낳아 2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남은 대기업을 다니다가 사표를 내고 올 9월에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올 2월에 결혼해서 부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차남은 히다치회사에 2년째 근무하고 있고 막내 딸은 대학 3학년이다. 일본에 와서 열심히 일하다보니 벌써 아이들은 이렇게 성장하였다.”
모델 양현숙 씨는 “전남 곡성 출신, 30년 전 남편을 따라 일본에 건너와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자녀는 3남 1녀, 아들 3명은 성인이 되었고 늦둥이로 태어난 딸은 중 2학년이다. 아들 3명은 벌써 좋은 직장에 들어가 잘 살고 있다. 일본 사람과 결혼하여 사랑할 수 없는 일본을 사랑하게 되었고 한일 양국의 다리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큰 가치를 느끼며 항상 감사하게 생활하고 있다.”
![]() |
▲야마시다공원 장미와 함께 |
현모양처 양해숙(楊海淑) 씨는 “전북 순창 출신, 지금껏 화를 한 번도 내지 않고 살아온 평화주의 남편, 그리고 1남 3녀 연년생 아이들과 함께 신주쿠에 있는 작은 집에서 오손도손 살고 있다. 어느날 큰 딸이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나라 애국가를 부르는 걸 보고 감동해서 눈물났던 기억이 있다. 딸이 한국노래를 흥얼거릴 때면 괜히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한국인 엄마를 자랑스러워 하며 감사하고 있다. 이제는 자식들에게 위로 받고 산다. 좁은 방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에 마냥 행복하다.”
막내 이진희(李真熙) 씨는 “서울 출신, 2000년 남편과 함께 일본에 건너와 딸 셋(19·16·15살)을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남편은 세계일보에 근무하고 딸 셋은 모두 일본 에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성우와 그림 쪽으로 진로를 희망하고 있다. 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문화도 많이 접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
▲야마시다공원 분수대 앞에서 |
[저작권자ⓒ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