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미세(仲見世)
향 연기 속의 염원
에코인(回向院): 비극의 위로에서 통신사의 숙소로
스모의 성지, 에도 서민의 열광을 계승하다
두 나라를 잇는 다리, 료고쿠바시(両国橋)
[로컬세계 = 글·사진 이승민 대기자] 도쿄의 중심부가 고쿄의 침묵과 마루노우치의 정연함으로 대변된다면, 동쪽 끝 스미다강 변의 아사쿠사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활기로 가득 차 있다. 거대한 붉은 등 '카미나리몬(雷門)' 앞에 서면, 이곳이 왜 400년 넘게 도쿄 서민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불려왔는지 단번에 깨닫게 된다.
어부의 그물에 걸린 황금빛 기적, 그 속에 흐르는 백제의 피
센소지의 시작은 천 년 전 어느 봄날의 파닥거리는 물고기 소리에서 비롯되었다. 서기 628년 3월 18일 아침, 스미다강(隅田川)에서 투망을 던지던 히노쿠마(檜前) 성씨의 형제 어부는 묵직한 그물의 느낌에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끌어올린 그물 안에는 은빛 물고기 대신 진흙 묻은 작은 관음상 하나가 걸려 있었다.
형제는 조각상을 강물로 던져버렸지만, 그 조각상은 신기하게 다음에도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범상치 않음을 느낀 형제가 조각상을 정성껏 닦아내자 눈부신 황금빛 관음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소박한 '기적'은 순식간에 마을로 퍼졌고, 당시 지식인이었던 하지노 나카토모(土師中知)가 자신의 집을 사찰로 개조해 관음상을 모신 것이 오늘날 도쿄 최고(最古) 사찰의 시초가 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 하나를 마주한다. 기적의 주인공인 어부 형제의 성씨 '히노쿠마'와 사찰을 세운 '하지' 씨는 모두 고대 일본으로 건너온 백제계 도래인 집단의 성씨라는 점이다. 1,400년 전 머나먼 바다를 건너온 우리 선조들의 손끝에서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아사쿠사를 걷는 한국인 여행자의 발걸음에 묘한 긍지와 애틋함을 더해준다.
나카미세(仲見世)
카미나리몬에서 본당까지 이어지는 약 250m의 나카미세 거리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상점가 중 하나다. 에도 시대부터 참배객들에게 간식과 기념품을 팔던 이 길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갓 구워낸 센베이의 고소한 향과 아게만쥬의 달콤함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조선통신사 일행이 인근 숙소인 혼간지(本願寺)에 머물며 이곳의 북적이는 장터와 사찰의 위용을 보고 감탄했다는 기록처럼,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계급과 국적을 막론하고 누구나 어우러지는 열린 공간이다.
향 연기 속의 염원
본당 앞 대형 향로에서는 쉴 새 없이 연기가 피어오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픈 곳에 연기를 끼얹으며 안녕을 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화려한 건물들은 대부분 2차 세계대전 당시 소실되었다가 전후에 시민들의 정성으로 재건된 것들이다. 카미나리몬 역시 기업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병 고침을 기원하며 기부해 다시 세워졌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다시 붉은 기둥을 세운 아사쿠사 사람들의 생명력은 경이롭다. 본당 뒤편 '홋피 거리'의 선술집에서 낮부터 잔을 기울이며 웃음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모진 풍파 속에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았던 에도 서민의 기질을 엿본다.
스미다강 너머로 현대의 상징인 '스카이트리'가 높게 솟아 있고, 그 아래로는 인력거를 끄는 젊은이들의 활기찬 외침이 울려 퍼진다. 아사쿠사는 박물관에 갇힌 유산이 아니다.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 반들반들해진 돌바닥처럼, 매일의 삶과 기도가 쌓여가는 살아있는 현장이다.
붉은 등 아래서 빌었던 수많은 소원 중 하나는 아마도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평화였을 것이다. 다음 산책은 스모의 함성과 역사의 기록이 공존하는 곳, 료고쿠(両国)로 향한다.
아사쿠사에서 붉은 아즈마바시(吾妻橋)를 건너 스미다강을 따라 내려오면, 공기의 무게가 사뭇 달라진다. 이곳 료고쿠는 거대한 덩치의 리키시(力士, 스모 선수)들이 유카타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스모의 마을'이자, 에도 시대 최대의 비극과 화려한 축제의 기억이 겹겹이 쌓인 역사의 땅이다.
에코인(回向院): 비극의 위로에서 통신사의 숙소로
료고쿠 산책의 출발지는 '에코인'이라는 사찰이다. 1657년 에도 성 천수각마저 집어삼켰던 메이레키 대화재 당시, 신원 미상의 희생자 10만여 명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곳은 에도 서민들에게는 거대한 위령탑과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 에코인은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곳은 에도 시대 조선통신사 일행이 쇼군을 배알하기 위해 머물렀던 공식 객사였다. 당시 에도의 문인과 화가들은 통신사의 수준 높은 문물을 접하기 위해 이곳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지금은 현대적인 빌딩 숲에 둘러싸여 고요하지만, 나는 사찰 경내를 거닐며 400년 전 이곳을 가득 채웠을 필담의 소리와 묵향을 떠올린다. 이국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시를 읊었을 사절단의 마음과, 그들의 선진 문화를 한 자라도 더 배우려 했던 에도 지식인들의 열망이 이 마당 어디쯤에 스며있지 않을까.
스모의 성지, 에도 서민의 열광을 계승하다
에코인 바로 옆에는 일본 스모의 메카인 '료고쿠 국기원(両国国技館)'이 위용을 자랑한다. 사실 과거에는 에코인 경내에서 스모 경기가 열렸다. 화재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자선 경기로 시작된 스모가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로 자리 잡은 것이다.
국기원 주변을 걷다 보면 머리를 정성껏 땋아 올리고 나막신을 신은 젊은 리키시들과 마주친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땀방울 뒤에 숨겨진 고된 수행의 무게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료고쿠의 식당가에서 맛보는 '창코나베(스모 선수들이 즐겨 먹는 전골 요리)'는 단순한 보양식을 넘어,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 동네 사람들의 묵직한 삶의 맛이다.
두 나라를 잇는 다리, 료고쿠바시(両国橋)
료고쿠라는 지명은 본래 '두 나라(무사시와 시모사)'를 잇는 다리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과거 스미다강은 두 지역의 경계였고, 료고쿠바시는 그 단절된 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강변 산책로(스미다강 테라스)에 서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에도 시대에는 이곳에서 대규모 불꽃놀이(하나비)가 열려 강 전체가 환희로 가득 찼고, 통신사 일행은 배를 타고 이 물길을 지나 에도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경계를 지우고 소통을 택했던 다리의 이름처럼, 료고쿠는 예나 지금이나 낯선 존재들이 만나 친구가 되는 환대의 공간이다.
료고쿠 역전의 에도 노렌(江戸NOREN) 상가를 둘러보며 산책을 마무리한다. 현대적인 건물 안에 에도 시대의 거리를 재현해 놓은 이곳에서, 과거를 현재로 끌어올리려는 도쿄 사람들의 집요한 노력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통신사가 머물던 객사는 이제 작은 비석으로 남았지만, 그들이 남긴 '성신교린'의 정신은 료고쿠바시를 건너는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 속에 여전히 살아있다. 다음 산책은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 에도 시대의 정취와 현대적 예술이 공존하는 수로의 마을, 기요스미 시라카와(清澄白河)로 향한다.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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