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 철교 아래의 비밀 기지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
미래로 뻗어가는 유리 함선
천황의 길에서 시민의 광장으로
[로컬세계 = 글 사진 이승민 도쿄 특파원] 긴자(銀座)의 화려한 명품 거리에서 서쪽으로 불과 한 블록만 발을 옮기면, 풍경의 채도가 낮아지며 정겨운 기차 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유라쿠초(有楽町)다. 이곳은 도쿄에서 가장 세련된 거리와 가장 서민적인 술집 거리가 ‘철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존하는 묘한 매력을 지닌 곳이다.
‘유라쿠(有楽)’라는 이름에 담긴 뜻과 전설
유라쿠초라는 이름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풍운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동생인 오다 유라쿠사이(織田有楽斎)에서 유래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에도 막부(江戶幕府)가 열릴 당시 그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명으로 스키야바시(数寄屋橋) 성문 주변에 저택을 세웠고, 그 일대를 '우라쿠하라(有楽原)'라 불렀다고 한다.
비록 유라쿠사이가 생애 대부분을 간사이(關西)에서 보냈고 에도 저택에 대한 공식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400년 전 풍류를 즐기던 다인(茶人)의 이름이 오늘날 도쿄 최고의 번화가 명칭으로 남았다는 사실은 여전히 흥미롭다. 그의 호처럼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장소로 흐르고 있다.
붉은 벽돌 철교 아래의 비밀 기지
유라쿠초 산책의 백미는 단연 ‘가드 시타(가드 밑)’라 불리는 철교 아래 공간이다. 1910년 독일 기술을 도입해 붉은 벽돌로 견고하게 쌓아 올린 이 아치형 철교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야마노테선(山手線)의 육중한 무게를 견뎌왔다.
철길이 머리 위로 지나갈 때마다 ‘쿠궁쿠궁’ 진동이 울리는 이 공간 속에는 수십 년 된 꼬치구이 집인 야키토리(焼き鳥)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낮에는 펜을 휘두르던 신문기자들이, 밤에는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연기 속에 섞여 맥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쇼와 시대(昭和時代)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유라쿠초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
유라쿠초는 일본 근대 언론과 문화의 심장이기도 했다. 마이니치(每日), 아사히(朝日) 신문 본사가 둥지를 틀었던 이곳은 동시에 일본 최초의 서구식 극장인 ‘유라쿠좌(有楽座)’와 다카라즈카(宝塚) 극장이 들어선 극장의 거리였다.
1957년 소고(十合) 백화점 오픈과 함께 발표된 프랑크 나가이의 <유라쿠초에서 만납시다(有楽町で逢いましょう)>는 열도를 뒤흔들며 이곳을 만남의 성지로 만들었다. 비록 아사히 신문사 자리에 ‘유라쿠초 마리온’이 들어서고 소고 백화점이 빅 카메라로 바뀌었지만, 화려한 쇼윈도와 극장을 드나들던 청춘들의 설렘은 오늘날 세련된 빌딩 숲속에 여전히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도쿄 국제 포럼: 미래로 뻗어가는 유리 함선
철길의 소음을 뒤로하고 조금만 걸으면, 거대한 유리 고래 한 마리가 도심 속에 내려앉은 듯한 도쿄 국제 포럼을 마주하게 된다. 옛 도쿄 도청(東京都庁) 자리에 세워진 이 건축물은 유라쿠초의 현대적 얼굴이다.
60m 높이의 유리 천장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아래 서면, 마치 거대한 함선의 갑판 위에 서 있는 듯한 개방감을 느낀다. 좁고 어두운 ‘가드 밑’과 이 투명한 현대 건축물이 마주 보고 있는 것, 그것이 도쿄라는 도시가 가진 중층적인 매력이다.
도쿄역(東京駅)과 마루노우치(丸の内)
유라쿠초의 정겨운 철길을 따라 북쪽으로 걷다 보면, 마침내 도쿄의 진정한 관문이자 얼굴인 도쿄역의 웅장한 붉은 벽돌 외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메이지의 건축왕’ 다쓰노 긴고와 소나무 말뚝의 비밀
1914년 완공된 도쿄역은 건축가 다쓰노 긴고(辰野金吾)의 역작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반이 약한 갯벌 지대에 건물을 올리기 위해 무려 1만 개가 넘는 소나무 말뚝을 지하에 박아 넣었다는 사실이다.
2007년 복원 공사 당시 발견된 이 말뚝들은 지하수 덕분에 공기가 차단되어 100년 동안 썩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건물을 지탱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닥부터 단단히 다진 장인 정신(職人精神)이 오늘날의 도쿄역을 만든 셈이다.
도쿄역, 사라졌던 3층과 돔의 부활
1945년 도쿄 대공습(東京大空襲)으로 소실되어 60여 년간 평평한 2층 지붕으로 남았던 도쿄역은 2012년 마침내 본래의 3층 외벽과 팔각형 돔 지붕을 되찾았다.
돔 천장을 올려다보면 여덟 마리의 독수리 조각과 십이지신(十二支神) 중 8개의 동물이 조각되어 있다. 나머지 4개의 동물은 설계자 다쓰노 긴고의 고향인 사가현(佐賀県) 다케오 온천(武雄温泉) 누문에 새겨져 있어, 두 장소를 연결하는 기묘한 인연을 보여준다.
마루노우치(丸の内)
도쿄역 정면의 마루노우치는 원래 군부대 연병장으로 쓰이던 거친 벌판이었다. 미쓰비시(三菱)의 이와사키 야노스케(岩崎弥之助)가 이 땅을 통째로 사들였을 때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그는 이곳에 런던의 롬바드 거리를 모델로 한 ‘잇초 런던(一丁倫敦)’을 건설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서구식 오피스 타운은 당시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었으며, 무모해 보였던 거상의 안목이 오늘날 세계적인 경제 심장부를 만들어냈다.
천황의 길에서 시민의 광장으로
도쿄역 광장에서 황거(皇居, 고쿄)로 길게 뻗은 교교도리(行幸通り)는 원래 천황이 행차할 때 사용하던 전용 길이었다.
이제는 시민들의 우아한 산책로가 되어 가을이면 황금빛 은행나무가 붉은 벽돌과 대비를 이루며 절경을 선사한다.
광장 끝자락에 위치한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三菱一号館美術館)’의 조용한 안뜰에 앉아 있으면, 이곳이 한때 황량한 벌판이었다는 사실이 아득한 전설처럼 느껴진다.
도쿄역은 단순히 기차를 타기 위해 거쳐 가는 곳이 아니다. 자존심을 다시 세운 복원(復元)의 역사이자, 버려진 땅을 금싸라기 땅으로 일궈낸 개척의 기록이다.
붉은 벽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백 년의 시간을 손 끝으로 느끼며, 이제 도쿄의 가장 활기찬 젊음이 교차하는 곳, 니혼바시(日本橋)와 간다(神田) 그리고 도쿄역 너머의 또 다른 이야기로 발길을 재촉한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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