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혈맥 문윤국,
정주와 상해를 잇는 거대한 가교가 되다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1920년대 초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내외를 연결하는 비밀 행정 조직인 '연통제'와 통신 기관인 '교통국'을 가동했다. 이는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 자금을 모으고 정보를 전달하는 독립운동의 중추였다. 평안북도 정주의 문윤국(文潤國) 지사는 이 위험천만한 비밀 작전의 핵심 설계자이자 실행자였다.
성경책과 지팡이, 그리고 ‘침묵의 운반책’
상해 망명 전후, 문 지사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국내 자금을 안전하게 임시정부로 수송하는 일이었다. 당시 일제는 국경마다 헌병과 밀정을 배치해 물 샐 틈 없는 검문을 벌였다. 이때 문 지사의 목회자 신분은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그는 두꺼운 성경책의 속지를 파내어 고액권을 숨기거나, 속이 빈 대나무 지팡이 안에 독립 자금 영수증과 비밀 지령을 봉해 넣었다. 겉보기에는 힘겨운 길을 가는 목사였으나, 그가 짚은 지팡이와 품에 안은 성경 안에는 조선 독립의 사활이 걸린 ‘혈맥’이 흐르고 있었다.
정주 연통제, 북방 독립운동의 거대한 ‘정거장’
문 지사가 활동했던 정주는 연통제와 교통국 운영에 있어 최적의 요충지였다. 그는 오산학교 인맥과 기독교 조직을 활용해 촘촘한 비밀 연락망을 구축했다.
정주에서 모인 자금은 밤을 도와 압록강을 건넜고, 단동(安東)의 이륭양행(怡隆洋行) 등을 거쳐 상해로 흘러 들어갔다. 일제가 아무리 가가호호 수색을 벌여도 문 지사가 직조한 연통제의 그물망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는 '점조직' 형태의 연락 체계를 도입해, 한 명의 운반책이 잡히더라도 전체 조직이 붕괴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다.
7만 원의 운반 작전: 목숨을 건 ‘혈로(血路)’
문 지사가 가산을 털어 마련한 7만 원을 상해로 보낼 당시의 긴박함은 전설에 가깝다. 이 거액을 한꺼번에 운반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그는 이를 여러 번에 나누어 연통제 요원들을 통해 분산 이송했다.
때로는 짐꾼의 봇짐 속에, 때로는 아낙의 치맛자락 속에 숨겨진 돈들이 압록강의 거친 물결을 넘었다. 문 지사는 자금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신호가 올 때까지 밤마다 뜬눈으로 기도하며 지하실을 지켰다. 이 자금들은 훗날 상해 임시정부가 일제의 집요한 와해 공작 속에서도 외교 활동과 무장 투쟁을 이어갈 수 있는 든든한 핏줄이 되었다.
[에피소드] 국경 검문소의 정적을 깨는 ‘거룩한 기도’
1920년대 초, 압록강 철교를 넘어 안동(현 단동)역에 도착한 승객들은 삼엄한 출입국 관리소를 거쳐야 했다. 관리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를 대조하고 짐을 살피던 중, 문윤국 지사의 차례가 되자 한 관리가 봇짐 위에 놓인 낡고 두꺼운 성경책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목사님이라고 하셨군요. 그런데 이 성경책이 보통의 것보다 훨씬 두껍고 무거워 보입니다. 조사를 위해 잠시 맡겨주시겠습니까?"
관리의 눈에는 공무원 특유의 예리한 의심이 서려 있었다. 성경책 표지 안쪽에는 임시정부의 운명을 좌우할 거액의 군자금 수표가 숨겨져 있던 절체절명의 순간. 문 지사는 당황하지 않고 관리를 향해 엄숙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관리여, 이 성경책 안에는 인간의 고통과 희망, 그리고 그대를 포함한 모든 영혼을 향한 하느님의 준엄한 약속이 담겨 있소. 내가 이 땅을 밟기 전, 잠시 감사의 기도를 올리게 해주시오."
문 지사는 검문대 앞에서 눈을 감고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기도를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국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는 이 발걸음을 굽어살피소서.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이곳 관리들에게도 지혜를 주시어, 썩어질 물질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보게 하소서. 이 책 속에 담긴 생명의 진리가 이 땅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게 하소서..."
그의 목소리는 사무소 안의 소란을 잠재울 만큼 경건했다. 진심 어린 기도의 무게에 압도된 관리들은 결국 성경책을 열어보지 못한 채 길을 내주었다.
교통국의 등불, 암흑기를 밝히다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선풍으로 연통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문 지사는 교통국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그는 상해판 독립신문(임시정부 기관지)과 임시정부의 포고문을 정주와 평안도 일대에 배포하며 민초들의 항일 의지를 일깨웠다.
"돈이 혈액이라면, 정보는 정신이다."
문 지사에게 연통제와 교통국은 단순한 연락망을 넘어, 고국과 망명지를 하나로 묶는 심리적 '태줄'이었다. 일제의 총칼로도 끊을 수 없었던 이 비밀스러운 운반 작전(독립 자금과 기관지 정보) 덕분에 독립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상해의 푸른 새벽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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