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안위 급박한 상황 속, ‘사비 투입’해 미 의원들 설득 의회가 한국입장 지지하게 만든 분, 청와대 뒤늦게 알고 초청 대통령이 감사의 뜻 직접 표해”
“고인은 최근 미국 유명 출판사에서 선금 300만달러(한화 40억원) 제시, 비밀공개 자서전 단독발행 제안, ‘무덤까지 안고 가야해” 일언지하 거절
하늘나라에서 허리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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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 박동선(워싱턴 소재 조지타운클럽 설립자) 파킹턴코퍼레이션 회장의 빈소 전경. UPF 제공 |
[로컬세계 = 전상후 기자] “박동선 회장님은 한국인이면서 세계인으로 살아오셨고, ‘세계인이면서 애국심 가득한 한국인’으로 한평생을 조국과 이웃을 위해 바치셨습니다.”
‘코리아 게이트’로 익히 알려진 고(故) 박동선 파킹턴코퍼레이션 회장의 기독교식 장례식이 진행된 지난 21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학교 부설 순천향서울병원 장례식장.
엄숙한 분위기 속에 유족, 생전에 다니던 교회 교우들, 고인과 두터운 교분이 있는 여러 주한 외교사절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이 진행됐다.
이날 추도사를 맡은 양창식 세계평화연합(UPF) 세계의장이 한국인이면서도 공산주의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고 세계평화를 위한 세계인으로 살아오셨던 고인의 헤아릴 수 없는 업적을 열거한 뒤 “인터넷에 부정적인 측면만 기록으로 남아 있는 코리아게이트의 전후좌우 진실이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목소리 톤을 높이자 유족과 많은 참석자들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며 장례식장은 일순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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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 페데리코 알베르토 쿠에요 카밀로 주한 도미니카공화국 대사가 고(故) 박동선 파킹턴코퍼레이션 회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 부설 순천향서울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헌화한 뒤 고인의 생애 업적을 기렸다. 이하 UPF 제공 |
양 세계의장은 “60년대부터 70년대 초 한국의 위상이 보릿고개조차 넘어서지 못하는 후진국이던 시절, 미국 의회의 도움이 절실한 때에 박 회장님은 정부 지원 한 푼 없이 순수 민간인 차원에서 자신의 사비로 설립한 법인인 조지타운클럽을 통해 연결된 네트워크를 동원해 미 정계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강력하게 후원하도록 나섰다”라고 운을 뗐다.
양 세계의장은 이어 “이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 70년대 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위 ‘박동선 코리아 케이트 사건’이었는데, 당시 일부 한국 언론들조차 미국언론의 무차별한 공략에 편승해 박 회장님을 마치 한국 정보부가 고용한 로비스트로 규정하며 네거티브한 방향으로 여론을 몰고 갔다”라고 지적했다.
양 세계의장은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르다. 로비스트라는 말은 특정한 나라의 정치권이나 대기업이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특정인을 고용하여 계약에 따라 큰 비용을 지불하고 그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부르는 용어”라며 “미국의 경우 정치인들이 은퇴한 뒤 합법적으로 로비스트로 등록하고 특정국가나 대기업을 위하여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고인은 그런 종류의 직업적인 로비스트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언론에서 당신을 ‘로비스트’라고 부르는 표현 자체를 아주 거북하게 생각하셨다. 재벌 2세로서 개인적으로 무슨 용돈이 필요해서 조국의 어려운 상황을 비즈니스로 이용할 분은 추호도 아니었다”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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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순천향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박동선 파킹턴코퍼레이션 회장의 장례예배가 끝난 뒤 유해가 운구되고 있다. UPF 제공 |
“당시 ‘주한미군 철수’ 등의 움직임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안위가 좌우되는 급박한 상황을 보며 그저 평범한 한 한국인으로서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사비를 투입’하여 친분 있는 미 의원들을 설득하여 의회에서 한국 입장에 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를 나중에 알고 당시 청와대에서 초청하여 대통령이 감사의 뜻을 직접 전달했다”며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된 코리아 게이트는 진실을 기초로 전후좌우가 밝혀져야 한다”라고 설명하자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최근의 숨은 비화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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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동선(미 워싱턴 조지타운클럽 설립자) 파킹턴코퍼레이션 회장의 생전 모습. |
양 의장은 “고인과 관련한 숨은 미담이 너무나 많지만, 최근 몇 개월 전 미국의 유명한 톱클레스의 한 출판사에서 300만 달러(한화 40억원)라는 거액을 선 지불하는 조건으로 숨은 비화를 폭로하는 내용이 포함된 ‘박동선 자서전’을 단독 발행하겠다는 제안을 해 왔던 적이 있었다. 이는 미국 대통령을 지낸 사람에게도 성큼 제안하지 않는 큰 금액이지만 박 회장님은 ‘무덤까지 안고 가야 할 내용을 밝힐 수는 없다’고 하시면서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며 “고인은 신의와 신뢰를 생명으로 여겨온 국제신사인데, ▲막후에서 대만독립에 관여한 일 ▲1960년대 한일관계가 불신이 극에 달했을 때 막후에서 일본 중진의원들을 설득하신 일 ▲오늘날 한국 원자력 발전의 기반을 위해 미국의 기술을 한국으로 연계하는 일 ▲한국의 선진기술을 세계화하는데 펼친 정상외교의 숨은 공로 등 일반인이 모르는 사연이 너무 많다”라고 심중 깊숙한 곳으로부터 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호소하듯 열거했다.
양 의장은 “진정한 애국 한국인이면서 세계인으로 살아오시면서 하나님이 주신 지상의 사명을 다하시고 천상으로 향하시는 박동선 회장님께 성경 속 사도바울이 생의 최후를 앞두고 본인이 걸어온 길을 당당하게 선포한 디모데후서 4장을 회장님께 봉정한다.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라는 내용의 성경 구절을 고인의 영전에 바쳤다.
양 의장은 마지막으로 “갈등과 분쟁이 없는 천국에서 평안하시옵고, 하늘나라에서 생전에 수행하신 평화대사 역할 그대로 아직도 남과 북으로 허리가 잘린 상태로 있는 이 조국을 하나로 만드는 ‘대한민국의 평화통일 수호신’이 되어주소서!”라고 호소하며 8분여에 걸친 감동적인 추도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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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파나마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양창식(왼쪽) 세계의장이 박동선(오른쪽) 파킹턴코퍼레이션 회장, 지미 모랄레스(가운데) 과테말라 대통령을 만나 기념촬영을 한 장면. UPF 제공 |
<양창식 세계평화연합(UPF) 세계의장의 추도사 원문>
추모사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먼저 회장님의 유족과 친지여러분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오늘은 90평생을 이름도 빛도 없이 오직 조국을 위해 헌신해오신 한국현대사에서 전설적인 영웅 한 분을 하늘나라도 환송해드리는 안타까운 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박동선 회장님은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조국의 미래를 염려하던 선친의 혜안에 따라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도미하시어 미 동부의 명문대학 조지타운에서 수학을 하셨습니다. 당시 한국인은 아예 없고 동양계 학생도 찾기 어려웠던 그 어려운 시절에 회장님은 혈혈단신으로 와싱톤 한 복판에 착륙하신 것입니다.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나라, 유엔군과 미군에 의해 겨우 생존해온 한국에서 건너온 한 젊은이에게 세계의 수도, 거대한 와싱톤은 그져 두렵기만 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회장님은 조금도 기가죽기 않고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폐허가 된 조국을 살리겠다는 일념하나로 미국의 내로라하는 법조, 정치외교계의 거물들을 수 없이 배출한 명문 조지타운대학에 당당하게 입학하셨고 더 나아가 특유의 친화력과 부드러운 리더쉽으로 동양인 최초로 일약 조지타운의 학생회장으로 뽑히셨습니다.
졸업 후에 남들이 흔하게 달려가는 취업의 길을 마다하고 대학 정문근처에 조지타운클럽을 만들어 법인으로 등록, 약관의 나이에 클럽을 찾아오는 미국의 상하의원들과 개인적인 교분을 쌓기 시작하셨습니다.
조지타운클럽은 지금도 미 전역에 수백개도 넘는 클럽순위에서 탑 10 안으로 손꼽히는 명문클럽으로 와싱톤에서 정치 외교의 현장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로열층 설립자 룸 입구에는 창설자 박동선회장의 존함이 마치 명예의 전당 기록처럼 선명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박 회장님은 한국에 계시면서도 한국의 주요 정치권, 비즈니스멘들을 미국의 지도자들과 클럽을 통해 연결하면서 한미관계를 강화하는 민간외교활동을 해 오셨습니다.
저도 회장님께서 한국의 대기업 회장들과 미 정계의 큰 지도자들이 클럽하우스 파운더스 룸에서 미팅을 하였을 때에 배석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클럽 지배인은 회장님이 보내신 손님이라하면 최고의 VIP로 예우합니다. 이 클럽에서 회장님은 한 때 미국 상하의원의 거의 1/3을 만나셨다 할 정도로 놀라운 친화력을 발휘하셨습니다.
60년대부터 70년대 초 한국의 위상은 아직 보릿고개를 넘어서지 못하는 후진국이요 개발도상국이었습니다. 엘빈토플러의 말처럼 당시 민주화이전에 먼저 가난을 해결할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었던 한국의 입장에서 미국의회의 도움이 절실한 때에 회장님은 조지타운클럽을 통해 연결된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미 정계에서 한국정부의 입장을 강력하게 후원하도록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 70년대 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위 박동선 코리아 케이트 사건입니다. 당시 일부 한국 언론들조차 미국언론의 무차별한 공략에 편승하여 박회장님을 마치 한국 정보부가 고용한 로비스트로 규정하며 네거티브한 방향으로 여론을 몰고 갔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로비스트라는 말은 특정한 나라의 정치권이나 대기업이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특정인을 고용하여 계약에 따라 큰 비용을 지불하고 그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사람을 지칭 할 때 부르는 이름입니다. 미국은 정치인들이 은퇴한 뒤 합법적으로 로비스트로 등록하고 특정국가나 대기업을 위하여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장님은 그런 종류의 직업적인 로비스트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언론에서 당신을 로비스트라고 부르는 표현 자체를 아주 거북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재벌 2세로서 개인적으로 무슨 용돈이 필요해서 조국의 어려운 상황을 비즈니스로 이용할 분은 추호도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안위가 좌우지되는 상황을 보며 그져 평범한 한 한국인으로서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하나로 자비를 투입하며 친분있는 의원들을 설득하여 의회에서 한국입장에 서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를 뒤에 알고 청와대에서 초청하여 대통령이 감사의 뜻을 직접 전달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 부정적인 측면만 기록으로 남아 있는 코리아게이트는 진실을 기초로 전후좌우가 밝혀져야 합니다.
회장님은 일선에서 물러나신 뒤에도 공익재단을 설립하여 각종 사회사업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 오셨습니다. 매년 장애인 음악회 지원, 한국문화를 세계로 알리는 한복페스티벌, 차문화를 선도하는 차인회 조직, 한국의 음식문화를 알리는 등 문화 예술 외교분야에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해 오셨습니다.
특별히 타고나신 천성으로 한국에 부임하고 있는 주한 외국인 대사와 그 가족들을 당신 가족처럼 돌보셨습니다. 정말이지 외교부도 하기 어려운 민간외교활동이셨습니다. 한 달에도 몇 차례씩 대사들을 각종 모임에 초청하시어 거의 모든 주한 대사들이 박회장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따르는 모습을 본인도 측근에서 많이 지켜보아 왔습니다. 오늘 도열하고 있는 각국 대사들이 보내온 화환이 그 증거입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박회장님은 정말이지 멋진 국제신사 젠틀멘이십니다. 일단 집 밖에 나서실 때는 머리부터 신발까지 그야말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완벽한 드레스코드가 박회장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그 바쁜 중에도 주일날은 빠뜨리지 않고 수원까지 예배를 다니시던 철저한 크리스챤이시면서도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종교를 수용하기에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으시던 통큰 그리스도인 이셨습니다.
박동선 회장이 관여하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국내외적으로 너무 많아 몇 개월전에 미국 탑클레스의 한 출판사에서 선금 3백만불을 지불하고 자서전을 단독발행을 하겠다는 제안을 해 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사람에게도 성큼 제안하지 않는 큰 금액입니다. 하지만 회장님은 무덤까지 묻고 가야할 내용을 다 밝힐 수는 없다 하시면서 손을 내 저으셨습니다. 신의와 신뢰를 생명으로 여겨오신 국제신사이십니다.
회장님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수십년전의 사건과 내용 관련자들의 이름 장소까지 완벽하게 기억하시는 천재이셨습니다. 위기 가운데 있었던 대만독립에 관여한 일, 한일관계가 불신으로 극에 치달았을 때 막후에서 일본중진의원들을 설득하신 일, 심지어 오늘의 한국 원자력 발전의 기반을 위해 미국의 기술을 한국으로 연계하는 일, 한국의 선진기술을 세계화 하는데 펼치신 정상외교 등은 일반인이 모르는 사연 사연이 너무 많습니다. 비교적 소상하게 곁에서 지켜보던 저는 1년여 전에 한국의 유명작가 2명을 회장님께 소개하면서 자서전을 구술로 만드시도록 강력하게 권면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귀빈 여러분
개관이정(개관사정)이라 했습니다. 사람은 관 뚜겅을 덮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수도승은 다비식 후 사리로 그 증거를 남긴다 합니다. 하지만 박동선회장님은 사리로 남을 그 보화들 조차 생전에 가루로 만들어 후학들에게 나누어주고 오대양 육대주에 다 뿌리셨습니다.
그러나 회장님의 삶은 공수래공수거가 아닙니다. 보듬고 다듬고 안아주던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진실하고도 참된 참사랑의 씨앗으로 나누어 주셨으니, 그 열매는 가시덤불에 떨어지지 않고 저 하늘에 북극성처럼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별 빛으로 반짝이며 역동적으로 살아 남아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박동선 회장님!
이제 회장님은 하나님이 주신 지상의 사명을 다 하시고 천상으로 향하십니다. 한국인이면서 세계인으로 살아 오셨고 세계인이시면서도 진한 애국자 한국인으로 한평생을 나라와 이웃을 위해 바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생의 최후를 앞두고 본인이 걸어온 길을 당당하게 선포한 디모데후서 4장을 회장님께 봉정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
회장님 오늘이 바로 그 날 이십니다. 회장님 가시는 길 좌우에 천사들이 장미와 백합으로 단장하고 도열하여 천성길을 안내하실 것입니다. 저기 자랑스런 한국인 박동선회장이 입성한다는 함성과 박수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내외귀빈 여러분!
60년대 국민소득 87불 후진국에서 최근 4만불 가까운 선진한국이 될 때까지 이름도 빛도 없지 자원봉사로 크게 기여하신 애국자 박동선 회장님이 하늘나라로 향하십니다. 한 생애를 한 줌의 재 조차 남기지 않고 활활 불태우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활화산처럼 하루도 쉬지 않고 살다 떠나시는 승리자 박동선 회장님의 떠나시는 길은 결코 슬퍼만 할 일은 아닙니다.
인간적인 이별의 아픔을 오히려 감사와 영광으로 환송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회장님처럼 조금도 미련없이 한 생애를 위대하게 살다 가신 분의 삶은 슬픔보다는 영광이요 찬양이요 성화입니다.
여러분 동의하시면 어둠과 사망을 떨치고 밝고 환한 성화의 천성길을 향하시는 회장님께 아무걱정말고 잘 가시라고 큰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올려드리십시다!
감사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동선 회장님!
이제 회장님은 지상에서 사명 완수, 미션어컴플리시 하시고 먼 길을 떠나십니다. 다시는 아픔과 갈등과 가난과 분쟁이 없는 천국에서 부디 평안하십시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아직도 남과 북으로 허리가 동강나 있는 이 조국을 하나로 만드시는 대한민국의 평화통일수호신이 되소서!
자랑스런 한국인! 자랑스런 세계인! 언제나 가슴 뜨거운 사랑의 표상 박동선 회장님! 영원한 국제신사, 평화대사 박동선 회장님! 부디 하늘가시는 길 평안 평안하소서
회장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흠모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묶어 추모와 감사의 글을 올리옵니다.
2024년 9월 21일.
양 창 식 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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