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시설 설계·감리, ’면허 없는 건축사에게 위임‘ 절반값 저가 불법 하도급 만연
결국 부실 설계·감리 이어져, 상당수 건축물 ‘화재 뇌관’ 품고 있는 셈
소방업계, ‘분리발주 위반 단속강화' 한목소리
소방당국 “부실시공 우려 큰 ’분리발주 위반행위‘ 엄중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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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화재현장에서 소방관 여러 명이 공동으로 강력한 소화기를 이용, 살수하며 불을 끄고 있는 장면. 소방청 제공 |
[로컬세계 전상후 기자]저가 하도급으로 인한 소방시설 부실시공을 막기 위한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가 시행된 지 2년째로 접어들었으나 상당수 대형건설사가 참여하는 민간부문에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제도 정착이 겉돌고 있다.
특히 민간부문에서는 비용 절감을 노려 소방 설계·감리를 무면허 건축사에게 위임하고, 건축사는 다시 저가 하도급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부실 설계, 부실 감리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부실시공된 건축물에서 언제 어떤 형태의 대형화재사고가 터질지 뇌관을 건축물 속에 숨겨둔 상황인 셈이다.
4일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6∼2020년)의 화재 발생 현황을 보면 화재는 봄철(28.1%)과 겨울철27.9%)에 특히 많이 발생했다.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겨울철에 전체의 35.9%가 발생해 특히 많았다.
이처럼 화재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게 '소방시설 분리발주제도'다.
소방시설 분리발주제도는 소방시설 공사를 건설·전기 등 다른 업종 공사와 분리해 전문업체에 발주하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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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오전 08시 38분경 부산 부산진구 부암동 소재 모 주택 지하 보일러실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거주자가 소화기로 자체 진화해 큰 화재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화재 초기진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부산진소방서 제공 |
그간 건축물 건축과정에서 건축주가 소방시설 공사를 건설공사에 묶어 일괄 발주하고, 낙찰 받은 종합건설업체가 전문 소방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부실공사가 이뤄진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20년 9월 소방시설법 개정을 통해 소방시설 분리발주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소방시설 분리발주가 의무화된 지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건설현장 곳곳에서 소방시설 불법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소방청은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지난해 3~5월 일제 단속을 실시한 결과 251개소에서 600건의 소방관계법령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고 같은 해 6월 밝혔다.
이 가운데 소방시설업자가 아닌 사업자에게 소방시설공사 등을 도급한 도급 위반이 91건, 소방시설공사를 다른 업종의 공사와 분리해 도급하지 않은 분리도급 위반이 48건이었다.
소방공사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소방당국이 소방공사 현장 단속을 지역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으나, 워낙 교묘하게 진행된 민간 건설시장의 분리발주 미이행 실태를 밝히는데 한계점도 노출되고 있”며 “대대적이면서도 꼼꼼한 제도이행 점검 및 실태파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제도를 위반한 업체들은 건축주 등이 법 개정이 시행된 사실을 모르거나, 관행적으로 무등록자와 계약하거나, 통합 계약한 경우가 많았다.
보통 영세한 민간 건축주는 소방시설에 대한 설계와 감리를 관련 면허가 없는 건축사에게 위임해 저가의 불법 하도급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건축주가 소방시설 설계와 감리용역을 관련 면허를 등록한 자와 별도로 계약하면 1억원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를 건축사사무소에 일임하면 불법 하도급을 통해 절반의 대가로 계약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건축업계의 한 관계자는 “민간부문은 소방시설 분리 발주는 물론 설계와 감리 불법 하도급을 금지하는 법 개정사항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비용절감을 위해 설계와 감리를 면허가 없는 건축사에게 위임하고, 건축사는 저가로 하도급을 줘 부실 설계와 감리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업계 내부의 아픈 부분을 털어놓았다.
개정된 소방시설공사업법에 따르면 소방시설의 설계, 시공, 감리를 불법으로 하도급 한 경우에는 등록을 취소하거나 6개월 이내 또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소방관서들은 현재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제도의 정착을 위해 지속적인 단속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분리도급 위반, 불법 하도급, 허위 계약서 또는 이면계약에 대해 집중적으로 단속을 시행하고 있다.
임정호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재난예방과장은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제도는 하도급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품질 높은 소방시설 시공과 하자보수 절차 간소화 등을 위해 도입된 것이다”며 “소중한 인명 보호와 관련된 소방시설 분리발주 제도가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위반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처벌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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