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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 배이화씨가 전쟁으로 희생된 영혼을 위해 살풀이 춤을 추고 있다.이승민 기자. |
[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지난 18일, 교토의 롬시아타에서 ‘조선통신사 인연의 도시 전국교류회 2017’이 열려 재일교포와 교토 시민들의 깊은 관심을 모았다.
1995년부터 조선통신사와 인연이 있던 도시에서 매년 열려온 이 행사는 도쿠가와 2대 장군 히데타다(秀忠)와 조선통신사가 교토의 후시미성(伏見城)에서 국서가 교환된 지 올해 400년을 맞아 이곳 교토시에서 열리게 됐다.
조선통신사의 주된 일은 조선 국왕이 일본 실권자 도쿠가와에게 국서를 보내고 답서를 받아오는 일이다.
그 행렬은 정사(수석 사신)와 부사를 중심으로 문관·무관, 그 외에 문화인 의사 악대도 따르고 있어 단원은 500여 명에 이르렀고 여기에 경호를 맡은 일본 각 번의 무사들을 포함하면 전체 수는 1000여 명에 달했다.
일본 교토시와 주오사카 대한민국 총영사관 등이 공동 주최한 이 행사는 교토 호리카와 고교생 피아노 연탄과 합창, 나카오 히로시(仲尾宏) 교수 강연, 배이화 감독의 창작 무용극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배이화(64) 감독이 연출한 창작 무용극은 ‘조선통신사가 교토에 왔다’는 주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화친 정책을 상대적으로 묘사해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무대에는 고향을 그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영상은 조선의 아름다운 산하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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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향하씨가 전쟁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
재일교포 가수 향하(가나츠) 씨가 전쟁의 아픔을 노래한다. 피리소리가 들려오고 한복 입은 선비가 나와 말을 한다.
“무로마치 시대 150년간은 조선과의 사절단 왕래도 있었다. 양국은 좋은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사이가 좋았는데 그 관계를 파기해버린 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임진·정유왜란으로 조선 국토가 전쟁의 폭풍에 휩싸였다. 농민은 난을 피해 산이나 골짜기에 몸을 숨겼지만 왜군의 칼에 시체는 산을 이뤘고 피는 강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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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가족 잃은 슬픔을 춤으로 그리고 있다. |
살풀이 춤에 흰옷을 입은 여인들이 나와 전쟁에 가족을 잃은 슬픔을 춤으로 그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1605년 3월, 일본의 실권자 도쿠가와는 교토의 후시미 성에서 조선의 사신 사명대사와 회견한다.
도쿠가와가 사명대사에게 말한다. “난 전쟁을 반대했다. 그 증거로 나의 군대는 한 명도 조선국의 땅을 밟지 않았다.”
사명대사가 도쿠가와에게 말한다. “먼저 조선국에 사과하고 포로들을 송환하라.”
천하를 장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에 국서를 보내 전쟁을 사과하고 침략전쟁으로 끌려온 조선인 포로들을 송환했다.
이에 조선 왕은 1607년 최초의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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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무용수들이 기모노를 입고 흥겨운 춤을 추고 있다. |
무대는 밝게 빛나고 한복을 입은 아낙들, 기모노를 입은 아가씨들이 나와 흥겹게 춤을 춘다.
조선통신사 일행 중에는 뛰어난 학자 시인 화가 의사 등이 있어 일본의 학자 문학가 예술가들과 교류가 활발하게 행하여졌다.
특히 일본의 아메노모리 호슈가 조선과의 선린우호의 공로자로 집중 조명된다.
그로부터 410년이 지난 올해, 조선통신사가 유네스코 세계기억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한일 양국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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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흥겹게 장고춤을 추고 있다. |
축제가 벌어진다. 장고잡이 아가씨들은 덩더쿵 덩더쿵 춤을 추고 사물패들은 사물을 울리며 발은 땅을 차 오르고 상모는 휘돌아 하나로 아우른다.
한국에서 ‘전통예술원 판’(감독 공영모)이 초대되어 한국의 소리를 신명나게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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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예술원 판'이 사물놀이를 선보이고 있다. |
한편 연출가 배이화 씨는 재일교포 2세로 한국무용 강사, 한국인 인권운동, 한국문화 공연등 조국사랑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배이화 씨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꽃처럼 있는 그대로’가 일본에서 인기 속에 방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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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화 씨가 주연으로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 '꽃처럼 있는 그대로'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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