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무용 공연 통해 아버지 아픔 전달
재일교포, 시대가 만들어 낸 희생자…“열린 마음으로 바라봐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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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2세 무용가 배이화 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승민 기자. |
일본의 영상작가 미나토 겐지로씨는 “자신의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씩씩하게 살아 온 한 여성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려 보고 싶다”며 다큐멘터리영화 ‘꽃처럼 있는 그대로’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일본 전역에서 상영 중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재일교포 무용가 배이화씨를 만났다.
자기소개
일본 기후현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났다. 본명은 배효자이고 예명은 배이화이다. 아이치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해가무단에 입단해 한국전통무용을 배워가면서 예술단원으로 활동했다. 1993년 개인무용교실을 열어 재일교포와 일본인에게 한국무용과 한국의 전통악기를 가르치면서 교토지역의 중고등학교를 순회, 인권강사로 지금까지 300여회를 강의해 왔다.
또한 노래방을 만들어 한국의 노래와 문화를 알리는 한일교류의 장을 펼쳐 놓았고 사회단체나 공공시설 등에서 한국전통무용 공연을 하면서 일본으로 건너오게 된 한국인의 유래와 일제시대에 강제징용되었던 역사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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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이화 씨가 일본인들이 많이 통행하는 길거리에서 한국의 장고춤을 선보이고 있다. 배이화 씨 제공. |
영화 ‘꽃처럼 있는 그 대로’ 는 어떤 내용인가
미나토 켄지로(港健二郞) 감독이 2014년 9월 제작에 들어가 작년 6월에 편집본이 만들어졌다. 이후 교토와 오사카에서 시사회가 열려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도쿄 상영이 결정됐다.
무용가, 자원봉사자, 인권강사, 재일한국부인회 교토지방본부 가미쿄지부 회장 등으로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벌이는 나의 모습과 아버지께서 일본에 끌려와 온갖 차별을 견디며 정착한 이야기다.
아버지의 귀중한 증언 테이프와 인터뷰 영상, 그리고 재일한국인의 애환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가 포함돼 있다. 왜 한국인이 일본에서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인지 그 이유와 오늘날 재일동포사회를 만들고자 희생해온 1세들의 노고를 알리는 메세지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
아버지의 이름은 배학봉(1918년∼98년), 경북 의성군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시절 1939년 강제 징용돼 조부모와 어머니, 언니를 집에 남겨놓고 일본 미야자키현의 깊은 산속 수력발전소 건설현장으로 징용됐다. 고되고 험한 일터에서 살기 위해 탈주했다.
일본인 노부부에게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히로시마에 도착하였고 효고, 미에, 후쿠이, 기후 각현의 건설현장을 전전했다. 기후현에 있는 육군비행장 지하정비공장 건설 중에 일본이 패전을 맞이했다. 조국으로 돌아가려고 오사카항으로 급히 달려 갔지만 귀국행렬 대혼란 속에 결국 배를 탈 수 없어 일본에 정주해 살게됐다.
한일합병 후 일제강점기란 일본인에게는 수치스런 역사이다. 그런데 그 역사를 일본인이 영화로 만들어냈다. 미나토 겐지로 감독은 어떤 인물인가
미나토 겐지로 감독은 영화 제작동기를 묻는 일본인들에게 “일본의 우익세력들은 특정 민족에 대해 혐오발언이나 과격한 행동을 일삼고 있다. 이것은 한국인에 대해 엄연한 차별과 편견이다. 재일동포가 일본으로 건너와 정착하게 된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행태이다. 그들의 무지를 깨우져 주기 위해 영화로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무용을 춤 추는 내 모습을 보면서 “재일한국인의 애환을 영화로 그려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나토 감독은 정의와 진실에 기준을 두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의협심이 강한 사람이다.
영화 제작비는 얼마나
이 영화는 기획 단계부터 투자를 받지 않고 제작비 300만엔을 전부 시민의 성금으로 충당했다. 1장에 1500엔인 제작협력권을 발행했는데, 2000장이 6개월 만에 전부 매진됐다.
재일동포와 일본인으로 구성된 제작지원위원회가 결성돼 힘을 보태준 것이다. “일본인에게 우리의 뿌리를 알리는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호소해 재일동포의 후원을 이끌어낸 것이다.
현재 활동은
한국 요리점을 경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다채로운 한국문화활동을 하려면 생활비는 물론 활동비용이 없으면 진행할 수가 없다.
또한 주 3회의 투석치료 중인 남편을 돌보면서 바쁜 삶을 보내고 있지만 아무리 바빠도 중고등학교를 순회하면서 한국무용이나 장고와 북을 가르치면서 일제시대를 설명하고 인권과 평화의 귀중함을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내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한국인의 후손으로 태어나 조국을 위해 사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꼭 발목을 잡는다.
조국 땅 한국인에게 한 마디 ?
로컬세계를 통해 조국에 계신 동포들에게 말씀드릴 기회가 돼 고맙고 기쁘다. 우리 제일교포는 일제강점기 아픈시대의 물결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일본에 정착하게 됐다. 수많은 차별과 편견 속에 험난한 길을 개척하면서 오늘의 재일동포사회를 만들었다.
우리 재일교포들을 향해 친일이나 매국노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을 때 가슴이 무척 아팠다. 재일교포는 아픈시대가 만들어 낸 희생자들이다. 하지만 조국을 원망하지 않았고 한국의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의 성과 이름을 사용하면서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열린 마음으로 재일교포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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