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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김정훈 씨가 23일 도쿄 신오쿠보에서 맨 미팅을 앞두고 무대에서.(사진 이승민 특파원) |
[로컬세계 = 이승민 특파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는 영화라면 누구라도 ‘미워도 다시 한번’을 떠올릴 것이다. 당시 아시아인을 울렸던 이 영화 때문에 손수건 값이 올랐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지난 23일, ‘미워도 다시 한번’의 주인공 배우 김정훈이 도쿄 신오쿠보를 찾아 팬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어느새 60세가 살짝 넘은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예쁘고 어려 보이는 얼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날 김정훈은 무대에서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주요 부분을 스크린으로 보여주며 주제곡을 불렀다. 옛날을 회상하며 또다시 관객들에게 손수건을 적시게 했다. 이어 일본 노래와 한국 노래 ‘옥경이’를 불러 박수와 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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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씨가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 스크린을 보고 있다. |
그는 ‘미워도 다시 한번’, ‘꼬마신랑’, ‘고교얄개’,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등 영화 300여 편에 출연했다. 당시 집값이 100만 원 할 때 영화 한 편을 촬영하면 20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60~70년대 촬영은 너무도 열악한 영화 환경이었다. 추운 겨울이 가장 힘들었다. 동상에 걸린 적도 있고 전쟁 영화를 촬영하다 파편에 맞아 죽을 뻔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김정훈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사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정훈은 1961년 12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4살 때이던 1965년 고영남 감독의 ‘이 세상 끝까지’로 데뷔, 귀여운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1960~1970년대 최고의 아역 배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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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씨가 무대에서 활짝 웃음을 보이며 팬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
그가 출연한 영화마다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지만 10대 소년 김정훈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밤낮 매일같이 영화촬영을 해야 했기에 자기만의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친구들과 수학여행도 못 갔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고민하던 그는 결심하고 영화 출연을 모두 거절했다. 1970년대 인기 영화 고교얄개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스크린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1981년 겨울, 20세가 되던 해에 대만으로 유학을 떠나 1982년 봄 국립타이완대학 사학과에 입학했다. 대만에서 20대를 보내며 평범한 학생으로서 자유로운 생활에 행복했다.
1989년, 8년간의 노력 끝에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아 귀국했다. 그해 석래명 감독의 ‘홀로 서는 그날’에 출연하여 성인 연기자로 복귀했다. 여러 편의 영화를 촬영하며 성인 연기에 도전했지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꼬마신랑 이미지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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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훈 씨가 팬들 앞에서 노래 옥경이를 부르고 있다. |
1996년 한국에서 결혼하여 이듬해 아들을 낳고 2년 후인 39세에 딸을 낳았다. 여행을 좋아해서 세계여행을 하던 중 힌트를 얻어 한국에서 제조업을 해봤지만 실패했다.
뭐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미얀마 방송국에서 디지털 장비에 대해 부탁을 받은 인연으로 미얀마에 갔다가 그곳 자연환경이나 순수한 국민성에 매력을 느껴 2007년 미얀마로 이민을 떠나 새로운 사업을 하게 됐다.
현재 가족은 모두 국경을 넘어 살고 있지만 화목하다고 했다. 자신은 한국에 있고 아내는 미얀마에 거주하고 있다. 아들은 캐나다 유학을 마치고 거기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딸은 홍콩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김정훈은 미얀마로 이민을 떠나 정착했지만 일 때문에 귀국했다가 부모님의 병환이 깊어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부모님을 위해 두 동생과 함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돌보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뮤지컬 가수 레이나(れいな), 가수 정정란, 가수 정호 씨가 찬조 출연하여 아름다운 노래와 춤으로 무대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해 주었다. 배우 김정훈의 팬 미팅은 도쿄에 이어 오사카에서도 가진다. 오사카국제교류센터에서 26일 오후 2시와 7시, 2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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