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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규 대기자 |
◆비명계 반란 29표로 체포동의안 가결
친명-비명 극명하게 대립 민주당 풍전등화
21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무기명 표결에 붙였다. 그 결과 재적의원 298명 중 찬성 149표, 반대 136표, 기권 6표, 무효 4표로 ‘체포’로 가결됐다 이 대표는 입원 단식을 하면서 부결을 시켜달라는 호소로 배수진을 쳤지만, 민주당 ‘비명계’ 의원들은 ‘방탄 프레임’을 벗는 길을 택했다. 따라서 이 대표는 영장실질심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따라 이 대표의 정치적 운명은 물론, 민주당 내부 상황도 극명하게 갈릴 전망이다. 만에 하나 불구속 기소로 결정되면 이번 표결 결과를 놓고 친명(친이재명)계와 비명계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친명-비명계의 갈등은 일찌감치 예견되었지만 표면화되지 않았다. 국민의 눈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비명계의 반란이 극명하게 드러나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게 됐다. 가결 당론을 정한 국민의힘(110명)소속 의원과 정의당(6명), 시대전환(1명), 한국의희망(1명), 여권 성향 무소속 의원(2명)까지 120명이 가결 표를 던졌다고 가정하면 민주당에서 29명의 가결표와 기권 6표, 무효 4표 더하면 39명의 반란표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대표 부결 호소 “소신없다” 부메랑
사실 이 대표는 20일 넘게 이어진 단식 과정에서 당내 동정론까지 확산되면서 ‘부결’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어 졌다. ‘부결’이 ‘가결’로 뒤집힌 원인은 이 대표 자신이 만들었다. 병상에 누운 이 대표는 표결 전날 자신의 SNS에 체포동의안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 줄 것이라며 부결을 호소했다. 이 대표의 호소문은 오히려 역효과로 나타났다. 일국의 야당 대표가 구속이 두려워 소신을 굽히는 비열함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국회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 수사가 무도함을 입증하겠다”고 공언했다. 불체포특권 포기 3개월 만에 그 약속을 스스로 깼다. 비명계의 한 의원은 “국회교섭단체 연설에서 보여준 당당하고 의연한 이 대표의 태도에 고무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연민의 정마저 남아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개인적 범죄의혹으로 당을 또다시 방탄의 늪으로 몰아넣을 수 없지 않느냐”며 “민주당의 지지도가 창당이래 최저로 떨어진 판국에 방탄이 지속되면 내년 총선에서의 참패는 불을 보듯 빤한 일이기 때문에 당내 기류는 혁신의 새바람을 기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체포동의안 가결을 통해 ‘방탄 정당’ 프레임을 벗는 효과는 거뒀으나 극심한 당내 분열이라는 숙제를 안게 됐다. 향후 갈등의 타개책에 대해서도 ‘친명계’와 ‘비명계’의 온도 차는 극명하게 갈라진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서 많이 놀랍고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반면 비명계 김종민 의원은 “민주당이 이번 사건을 통해 엄청난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내년 총선까지 방탄으로 가면 총선참패의 쓴잔을 마실 것이다. 앞으로 어려운 과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가면서 당의 이미지를 쇄신하면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표결 결과에 대해 ‘사필귀정’이라고 밝혔다.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에게 방탄조끼를 입혔던 민주당도 더는 준엄한 법치와 국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논평했다. 강 수석대변인은 또 “절반에 가까운 반대표가 나왔다는 건 아직 제1야당의 상당수가 얼마나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에 달린 이재명 운명…체포가결에 영장판사 부담 덜어
이제 이재명 대표 운명의 공은 법원으로 넘겨졌다. 서울중앙지법은 22일 이 대표의 영장실질심사 기일을 26일 오전 10시로 지정했다.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심리한다. 영장심사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이 대표의 구속여부는 26일 밤이나, 27일 새벽에 결정된다. 하지만 이 대표가 23일째 단식을 이어가며 병상에 누워있는 상태라 출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가 출석할 의지는 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기일 연기를 요청할 경우 법원이 심문을 연기할 가능성도 있다. 또 전례를 살펴보면 이 대표가 출석을 포기할 경우 변호인만 참여해 심문이 진행 될 수 있고 서면심사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영장실질심사가 끝나고 영장이 발부하면 검찰 수사는 기소까지 순항할 수 있지만, 만약 기각되면 지난해 10월부터 검찰력을 총동원해 벌여 온 이 대표 관련 수사의 정당성에 큰 흠집이 남을 수도 있다. 한 전문변호사는 검찰 영장청구서에 기록된 사안을 놓고 볼 때 기각결정은 예단하기 어렵고 신분이 야당 대표인데다 단식으로 인한 건강상태, 도피우려, 증거인멸 등을 고려해 불구속 기소로 재판을 받게 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영장 전담 판사 출신 변호사는 “체포동의안이 필요 없는 비회기 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면 판사의 부담이 심했겠지만, 국회에서 가결이 된 상태여서 조금은 부담을 덜은 셈”이라며 “동료 의원들이 감싸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가결했다는 건 영장발부의 상당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이 대표 기소뿐만 아니라 잔여 혐의에 대한 후속 수사도 탄력을 받게 된다. 검찰은 이번 영장 청구서에 담은 혐의 외에 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의 이 대표에 대한 쪼개기 후원 의혹(수원지검), 정자동 호텔개발 특혜 의혹(성남지청), 천화동인 1호 지분 428억 약정 의혹(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후속 수사의 중심은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수원지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검찰 인사에서 수원지검 지휘부에는 특수통들이 배치됐다. 신봉수(사법연수원 29기) 전 대검 반부패부장이 수원지검장, 강성용(31기) 대검 반부패기획관과 이정섭(32기)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이 나란히 1, 2차장에 임명된 점 등을 미뤄 볼 때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에 대한 수사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영장 기각 땐 정치검찰 오명…이 대표 기사회생
만에 하나 영장이 기각되면 이 대표는 정치적 탄압을 주장하며 법정 투쟁을 계속할 공간이 열린다. 재판 자체가 혼전 양상으로 접어들 수 있고 잔여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 스스로 이번 영장 청구서에 포함된 백현동, 불법 대북송금 사건 수사가 “위례·대장동, 성남FC 불법후원금 의혹(지난 3월 기소)보다 훨씬 더 증거가 탄탄하다(대검 간부)”고 평가하는 만큼 영장 기각의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다만 이 경우에도 법원이 영장 기각 사유를 어떻게 밝히는지에 따라 희비의 정도가 다소 차이 날 수 있다. 법원이 혐의 소명은 인정하되, 야당 대표 신분을 고려해 도주 또는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판단한다면 검찰은 최악은 면하는 셈이다. 반대로 영장전담 판사가 혐의 입증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검찰 입장에선 최악이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체포동의안을 가결했는데도, 사법부가 무리하게 영장을 기각했다고 검찰이 법원을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설득력은 떨어져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은 영장 기각은 아예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찰은 우선 당면한 영장실질심사에서 이 대표의 증거인멸 정황과 관련자들의 잇단 극단적 선택 등 핵심 증인들에 대한 위해 우려를 부각해 구속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검찰은 이미 법원에 증거서류를 포함한 700쪽이 넘는 기록을 법원에 제출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다”며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이 나눠서 영장실질심사를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정치적 운명은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달렸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이 대표의 정치생명은 거의 끝나는 것이나 다름없고 반대로 영장이 기각되면 야당탄압-정적 보복-정치검찰 등의 수식어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역공의 기회로 삼을 것으로 짐작된다.
◆박광온 원내 대표 등 원내지도부 총사퇴
의총서 가결 책임론 놓고 친명-비명계 ‘고성’
체포동의안 가결로 비명계는 이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체포동의안 가결 여진은 현 민주당 지도부를 혼돈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다. 박광온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기로 했다.
박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는 이날 본회의 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체포동의안 가결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고, 이를 의원들이 수용했다고 이소영 원내대변인이 기자들에게 밝혔다.
이 원내대변인은 "원내대표가 당 지도부 최고위원의 일원으로서 의원들에게 부결 투표를 요청했다"며 "(의원들을) 설득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런 설득에 따른 결론이 맺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스스로 판단해 사의를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조정식 사무총장을 비롯한 사무총장 산하 정무직 당직자들도 모두 사의를 표했다고 이 원내대변인은 전했다.
이 원내대변인은 "너무 늦지 않은 시일 내에 신임 원내대표 선출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며 "당헌·당규에 따라서 모든 것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 대표가 단식을 지속하는 것은 건강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기에 중단해야 한다"며 "최고위원들은 조속히 당을 안정시키고 이재명 당 대표를 끝까지 지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의총에선 친명계와 비명계 사이 체포동의안 가결의 책임론을 놓고 고성을 주고받으며 충돌했다. 친명계는 '원내 지도부 사퇴'를, 비명계는 '당 지도부 총사퇴'를 각각 주장하며 설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각파도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난파선에 올라탄 민주당은 풍전등화다. 남은 과제는 이 대표의 결단에 달렸다. 이번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 해도 ‘불체포특권’포기 약속을 스스로 깬 이 대표는 지도자로서의 신의를 상실한 것이다. 정치지도자는 신의를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이치도 모르는 것 아닌가.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가결을 겸허히 수용하고 영장실질심사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 본인 주장대로 검찰의 수사가 터무니없는 정치 수사라면 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릴 것이다. 구속이든 기각이든 불구속 기소이든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당을 혼돈 속으로 빠뜨린 책임과 기사회생시킬 책임 모두가 이 대표에게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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