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숙한 협곡에 숨어 초록의 이끼로 덮여있는 상단의 이끼폭포의 모습에 신비로움이 물씬 풍긴다.(사진=한상길 기자) |
[로컬세계 한상길 기자]육백산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황조리·신리·무건리에 걸쳐 있다. 고도 1,244m의 전형적인 육산이다. 육백산은 정상부 일대는 넓은 고원지대인 고위평탄면이 있어 어찌나 넓은지 조 600석을 뿌려서 경작할 수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 전한다.
일찍이 화전(火田)으로 개간되어 1960년대까지만 해도 화전으로 감자 농사를 지었으나 현재는 화전 정리사업에 의한 조림사업으로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다. 그 결과 잘 뻗은 낙엽송과 소나무 숲 군락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 오가는 이들을 반긴다.
삼척 내륙은 강원도에서도 깊고 깊은 오지 중의 오지로 통하는데, 이 산이 유명해진 이유는 육백산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는 무건리 이끼계곡의 이끼폭포가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어 탐방객이나 사진 동호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부터다.
무건리 이끼계곡에 가는 길은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산행과 병행한다.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에서 육백산을 올라 무건봉을 거쳐 이끼계곡으로 하산하여 접근하면 된다. 다른 하나는 신기리에서 소재말을 거쳐 이끼계곡으로 올라간다.
전자는 시간이 넉넉하고 이끼폭포만 보는 것으로는 양이 차지 않아 겸사해서 육백산을 관통해가면서 이 지역의 풍경도 감상해보고자 하는 산악 트레커들이 많이 이용한다. 후자는 그 길이가 짧아 오직 이끼폭포만을 염두에 두고 이용하는 접근법인데 주로 탐방객과 사진사들이 많이 이용한다.
▲육백산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울창한 산림지대의 모습. |
전자의 경우는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를 기점으로 육백산-장군목-1130m봉-1111.4m(무건봉)-무건리 이끼폭포 순으로, 관람 후 다시 후자의 하행 길인 큰말-구시재-소재말-석회광산-신기리 종착점으로 길이 15.3km에 소요시간은 6시간 정도이다.
임도와 산길을 들락날락하기는 수차례 반복해야 하는 산행길은 임도와의 이합 지점에 매우 신경을 써야 한다. 그 이유는 새로운 벌목작업으로 인해 기존에 없던 임도길이 수시로 생겨나서 이전에 방문했던 사람들도 길을 기억하지 못하고 헤맬 때가 많다.
산길은 실낱 같이 좁고 수풀에 가려져 있고 구불구불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인 만큼 오히려 작은 흔적들로 인해 오솔길이 상대적으로 또렷이 드러난다. 또한 여러 갈래로 이리저리 나눠지는 일이 없어 무난히 목적지로 갈 수 있다.
후자는 신기리에서 출발하여 이끼계곡까지 왕복 10km에 소요시간은 3시간이다. 이 코스는 신기리에서 석회암 광산을 지나 1㎞ 남짓 더 올라가면 이끼계곡으로 올라가는 임도의 들머리인 소재말이 나온다. 임도 초입에는 차량 통행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어 차량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다. 여기서 언덕인 구시재를 넘으면 아늑한 비포장 숲길이 이끼계곡 입구인 큰말까지 이어진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당도하면 무건리 이끼폭포를 알리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이 지점이 바로 전자의 육백산 코스의 하산길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표지판을 따라 길 아래 내리막길을 가다 보면 잡초에 묻혀 있는 초등학교 분교 터를 볼 수 있다. 1966년에 개교했다가 학생 수 감소로 1994년에 폐교돼 그해 10월 철거된 소달초등학교 무건분교 자리다.
도계는 석탄산업이 성행하던 시절 탄광이 생겨나면서 형성된 도시로 그 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광산들이 다 문을 닫은 상태다. 그 여파로 분교가 들어섰을 무렵에는 300여 명이 살던 무건리도 주민들이 하나둘 도시로 떠나면서 졸업생 89명을 배출한 무건분교도 개교 28년 만에 문을 닫았다. 22회 졸업생 수가 그간 89명이었으니 따져보면 한 해 평균 4명꼴이다.
무건리 이끼폭포는 전술한 표지목을 기점으로 300m 아래 위치한다. 내리막을 따라 10분쯤 가면 마침내 오지에 은밀히 숨어있으면서 수정처럼 빛을 발하고 있는 이끼폭포다.
푸른빛이 감도는 소(沼)와 함께 첫 번째 이끼폭포가 녹음 속에서 신비한 모습을 드러낸다.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모습의 이끼폭포는 높이가 7~8m에 이른다. 여러 갈래의 하얀 물줄기가 연초록 이끼바위를 타고 부채꼴 모양으로 쏟아져 내리면서 굉음을 토하고, 푸른 소와 폭포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신비감을 더한다.
▲초록 이끼로 뒤덮인 바위를 타고 쏟아져 내리는 하단의 이끼폭포 모습. |
다시 여기에서 7~8m 높이의 계단을 올라가면 짙푸른 용소와 10m 높이의 상단 이끼폭포가 협곡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상단의 왼쪽 동굴 안에도 또 거대한 폭포가 숨어있다.
무건리 이끼계곡은 이끼와 계곡물의 합창 소리는 녹색 치마에 흰 저고리로 분장한 여인이 맑고 투명한 수정 구슬을 노리개 삼아 치마 위에 장난치듯 굴려내고 있고 모습이라고나 할까.
이끼폭포란 온통 초록 이끼로 뒤덮인 바위를 타고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끼계곡으로 이름난 곳을 꼽자면 지리산 뱀사골 이끼계곡, 가리왕산의 장전계곡, 영월 상동 이끼계곡 그리고 바로 이곳 육백산의 무건리 이끼계곡이다.
무건리 이끼폭포는 그 빼어난 경관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져 그동안에는 일부 사진사들만이 소문을 듣고 찾아드는 정도였다. 그 이유는 딱 하나, 폭포로 가는 길이 멀고 험하기도 했고, 폭포에 도착해서도 하단 폭포에서 비경이 펼쳐지는 상단 폭포로 오르려면 가는 밧줄 하나에 의지해 수직의 바위를 타고 올라서야 했다. 험한 비탈이라 자칫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는 게 예사였지만 이런 위험성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이끼의 훼손도 심각해져만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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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이끼폭포의 모습. |
하지만 지난해에 삼척시에서 이끼계곡의 접근성이 용이하도록 데크와 전망대를 만들어 놓아 지금은 길이 편하다. 여기에 이끼폭포에는 관리인이 상주하여 이곳의 환경을 보호하며 사진 촬영 등의 목적으로 폭포 속으로 무단 침입하는 방문객을 감시하고 있다.
이끼폭포로 가는 길은 편해졌고 덕분에 이끼도 점차 회복 중이라 하니 다행스럽지만 한편으로 아쉬운 점은 압권이었던 비밀스러운 느낌이 한결 덜하다. 또한 상단 폭포의 경우 상단의 폭포 전망대에서는 폭포 전체가 너무 멀리 보이는 데다 우람하고 강인해 보이는 왼쪽 동굴의 거대 폭포와 그 밑의 깊은 소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몇 미터만 들어가면 말 그대로 별천지를 볼 수 있음을 알기에 못내 아쉬운 마음을 억누르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린다.
날머리인 신기리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대형 트럭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태영이엠씨 삼도사업소 석회석 광산이 길가에 있기 때문이다. 광산 주변은 흰 먼지에 뒤덮여 있고 석회석 광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계곡으로 흘러들어 쌀뜨물 색의 물을 만들고 있다. 이것은 신기리마을까지 계속 이어지다가 부근의 신기2교에서 다른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과 합쳐지며 희석되고 있다.
무건리 이끼계곡은 습기와 수량이 풍부한 때인 7∼8월에 절정을 이룬다. 그렇지만 올해는 짧은 장마와 이른 무더위에 이어 다시 늦은 장마의 시작으로 인해 오히려 지금이 적기다.
무더위도 날릴 겸 녹색치마 밑으로 흘러내리는 수정 구슬을 손바닥 한가득 담아 마음으로 이 선경을 느껴보자.
▲초록 이끼로 뒤덮인 바위를 타고 쏟아져 내리는 하단의 이끼폭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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