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종교·정치 거목'의 만남
고난의 시기 맺은 인연
남북 화해의 핫라인으로 승화
민주화 망명 시절부터 사후 예우까지
30년 넘는 '신뢰와 실용'의 궤적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한국 현대사의 거목인 고(故) 문선명 통일교 총재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 각각 종교와 정치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정점에 섰던 두 인물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마다 독특한 접점을 형성하며 '국익'과 '평화'라는 공통의 가치를 향해 손을 맞잡았다.
■ 망명 시절 싹튼 유대감… "고난 겪은 지도자의 공감대"
두 사람의 인연은 1980년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사 정권으로부터 탄압받던 김 전 대통령은 미국에서 한국의 민주화 상황을 알리는 데 주력했고, 이 과정에서 통일교 측 인사들과 직간접적인 교류를 맺었다.
특히 통일교 내 대외 협력을 주도하던 박보희 총재 등은 김 전 대통령의 안전 확보와 구명 활동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인물 모두 옥고와 탄압이라는 극한의 시련을 겪었다는 점은 서로에 대한 '지도자적 연민'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됐다.
문 총재가 설립한 '워싱턴 타임스(The Washington Times)' 역시 중요한 매개체였다. 망명 시절에는 한국 인권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뤄 미국 내 여론 형성을 도왔고, 재임 시절에는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미국 보수층에 설득하는 전략적 통로로 활용되기도 했다.
■ '햇볕정책'의 든든한 우군, 민간 대북 핫라인 가동
두 사람의 관계가 가장 빛을 발한 지점은 대북 정책이었다. 1991년 김일성 주석과 단독 회담을 하며 강력한 대북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문 총재는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햇볕정책의 실질적인 파트너 역할을 수행했다.
▶ 남북 경협의 상징: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북한 남포에 설립된 '평화자동차'는 남북 경제 협력의 기념비적 사례가 됐다.
▶ 민간 외교의 물꼬: 1998년 '리틀엔젤스 예술단'의 평양 공연은 남북 문화 교류의 숨통을 틔웠다.
▶ 비공식 채널: 정부 차원의 공식 라인이 경색될 때마다 통일교 측이 보유한 대북 핫라인은 남북 관계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당시 여권 실세였던 김경재 전 의원 등이 소통 창구로 활동하며 양측의 신뢰를 공고히 했고, 김 대통령은 통일교의 대북 사업이 긴장 완화에 기여함을 공식 인정하며 주요 행사마다 축전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 "역사가 기록한 예우"… 사후까지 이어진 신의
1999년 세계일보 창간 10주년 기념식에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문 총재 내외와 케이크를 자르는 모습은 두 사람의 각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이러한 예우는 사후에도 계속됐다.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시 문 총재는 깊은 애도를 표하며 조문단을 파견했고, 이듬해 통일교 측은 '세계평화 지도자 성화축제'에서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DJ를 공식 추모 대상자로 선정해 영정을 모셨다.
이어 2012년 문 총재가 별세했을 당시,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조화를 보내 화답한 것은 30여 년에 걸친 두 가문의 신뢰와 존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문선명 총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계는 '실용주의적 국익'과 '고난을 극복한 지도자 간의 상호 존중'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였다. 종교와 정치라는 경계를 넘어 한반도 평화라는 큰 뜻 아래 협력했던 두 거목의 발자취는 오늘날 남북 관계와 민간 외교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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