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대용량 배터리 화재는 우리에게 중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는가, 그리고 화재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대응방안은 충분한가 하는 점이다.
2025년 여름,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전동킥보드 충전 중 갑작스러운 폭발로 불길이 삽시간에 거실과 주방을 덮치며 수천만 원의 피해를 남겼다. 이제 이런 사건은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되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국내에서만 678건의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발생했고, 최근 3년간 매년 그 수는 증가세에 있다.
전동킥보드, 전기자전거, 무선 청소기, 보조배터리 등 우리 생활 속 기기들이 주요 발화원으로 작용하면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특정 산업의 리스크가 아닌 국민 모두가 직면한 ‘생활형 위협’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의 핵심은 ‘열폭주’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고밀도의 에너지를 저장하기 위해 복잡한 전기화학 반응을 활용하는데, 충격이나 과충전, 고온 환경, 내부 결함 등이 겹치면 발열과 분해, 폭발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열폭주(Thermal Runaway)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일단 시작되면 진압이 거의 불가능하며, 2024년 6월 경기도 화성의 한 공장에서 발생한 참사가 그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수천 개의 배터리가 연쇄 폭발하며 23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었고, 현장 소방관들조차 “기존 어떤 화재보다 위험했다”고 회상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일반적인 화재와 달리 1,000℃ 이상의 고온 화염과 유독가스를 동반하기 때문에 기존 분말이나 이산화탄소 소화기만으로는 진압이 어렵다.
오히려 대피 골든타임을 놓칠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안전 관리의 출발점은 무엇보다 ‘예방’이어야 하며, 작은 부주의가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발생한 많은 화재는 비인증 배터리 사용, 과충전 방치, 환기 불량한 실내 충전 등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일어났다.
한국소비자원과 소방청은 KC 인증 제품 사용, 잠든 시간 충전 금지, 충전기와 기기의 호환 여부 확인, 환기 가능한 장소에서의 충전, 손상된 배터리의 즉시 폐기 등을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이 취약계층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과 대국민 안전 캠페인이 절실하다.
실제로 호주는 전동킥보드 폭발 사고 급증으로 인해 기차 반입 제한을 검토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관련 법과 제도를 재점검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더 나아가 예방 중심의 대책과 함께 실제 사고 발생을 가정한 대응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대용량 배터리는 화재 발생 시 주위로 확대되지 않도록 격리된 장소에 보관하고, 대피 경로상에서는 충전이나 보관을 피해야 한다. 또한 배터리 화재 대피 시나리오를 반복 훈련하여 실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전기차, 스마트폰, 드론, 에너지저장장치 등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기술이다. 그러나 그 편리함 뒤에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존재한다. 배터리를 두려워하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조심하자는 것이다.
기업은 더 안전한 제품을, 정부는 더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야 하며, 우리 모두는 일상 속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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