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4월4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서 내린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정문’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전환점을 남겼다. 이날의 판결이 많은 사람들로 부터 회자 되는 이유는 뭘까. 너무나 명쾌하고 통쾌한 파면 결정문에 대해 그 어떤 논리도 대입이 될 수 없을 정도의 모범답안이기 때문이다.
판결은 헌재 재판관 8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내린 선고는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였다.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파면 사례이다.
◆협치 모르는 불통 정치는 국민과 민주주의 배반 행위
파면 결정문 핵심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는 ‘헌법질서 파괴와 국민 신임을 배반한 불법 계엄’으로 규정했다. ‘헌법질서 파괴와 국민 신임 배반’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도 조목조목 열거했다.
▶첫째, 비상계엄 선포 요건 미충족=헌재는 "12·3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 제77조와 계엄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야당의 폭주와 국정 마비를 막기 위한 경고성 조치"라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당시 국회 상황은 국가긴급권 행사를 정당화할 중대한 위기 상황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따라서 "경고나 호소 목적의 계엄은 법이 정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둘째, 국회 봉쇄와 기본권 침해=계엄 선포 후 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하고 의원들을 끌어내려 한 행위는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한 위헌"으로 규정했다. 나아가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 예산안 심의 등 권한 행사가 위기 상황을 초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주적 헌법질서를 훼손한 중대한 위법"이라고 판단했으며, 특히 포고령을 통해 국회의 정치 활동을 제한한 점도 위헌으로 판단했다.
▶셋째, 국군 통수권 남용=윤 전 대통령은 국군통수자로서 군을 동원해 정치인 체포를 지시한 정황도 사실로 인정했다. 헌재는 "국정원과 경찰에 체포를 지시한 모의와 통화 기록 등 증거가 이를 뒷받침한다"며, "이는 통치 행위로 보기 어렵고, 헌법상 의무를 위반한 행위"라고 판결했다. 이는 내란죄 논란과도 연결되지만, 헌재는 형사 판단을 넘어 헌법적 책임에 초점을 맞췄다.
▶넷째, 절차적 정당성 논란 기각=윤 전 대통령 측은 "국회의 탄핵소추가 졸속으로 이뤄졌고, 내란죄 철회 등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탄핵소추는 적법하게 의결됐으며, 일사부재리 원칙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가 문제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헌재는 "절차적 정당성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기각했다.
결론적으로 헌재는 파면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헌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행위는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중대한 위헌·위법"이라며, "그를 파면함으로써 얻는 공익이 국가적 손실을 압도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것보다 파면이 더 큰 헌법적 이익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이현우 교수 “헌재 결정문에 정치의 답 있다” 충언
다수의 국민은 헌재의 명쾌한 판결 이후 정치 정국이 안정되기를 기대했지만 현실 상황은 반대로 가고 있다. 이에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동아시론’에 ‘헌재 결정문에 정치의 답이 있다’고 일괄했다.
이 교수가 지적한 작금의 상황을 보자.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을 ‘내란당’이라 몰아세우면서 대선 후보를 낼 자격이 없다는 비난에다 국민의힘을 해산시켜야 한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개헌에 부정적인 뜻을 밝히자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는 것이며 지난 대선 공약과 배치되는 행보라고 공세를 펼치고 있다.
정치권은 불법 계엄과 대통령 파면이라는 격변을 겪고 나서도 달라진 게 없으니, 국민은 정치에 대한 혐오감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연일 쏟아지는 언론보도는 상대 당의 비방만 난무한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치는 집단”으로 싸잡는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잠재적 범죄자인 이재명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에만 골몰하는 집단”이라고 폄하한다. 양당 모두 합의를 모색할 대화 상대로 존중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6‧3 대선 앞둔 양당 泥田鬪狗 극단으로 변질
헌재 결정 이후 국민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정치권은 6·3 대선을 겨냥해서 정치를 더 극단으로 몰고 가고 있다. 국민의 선택지는 사실상 양당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독과점적 정당 구도 형태가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할 수 있는 뒷배가 되는 모양이다.
지난 4일 헌재가 판결한 결정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하지 않고 배제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물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거듭해서 일방적으로 국회의 권한을 행사했고, 대통령이 이에 대해 권력의 남용이라거나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정치적으로 이해되는 부분임을 인정했다. 민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헌재는 대통령과 야당이 공히 견제와 균형, 협치라는 헌법의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조율되고 해소돼야 할 정치의 문제”를 정치로서 다루지 못한 것이 작금의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라고 역사에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헌재의 판단을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는데도 여전히 국민의힘은 계엄의 근본적 원인 제공자로 민주당을 탓하고, 민주당은 이참에 국민의힘을 더욱더 궁지로 몰기 위해 ‘명태균 특검법’, ‘내란 특검법’ 등의 재표결을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의 법안 재의요구권(거부권)과 국회의 재의결권이란 제도는 상호 견제 장치를 통해 입법의 신중성을 높이려는 게 당초 취지다. 또 국회에 탄핵 권한이 아니라 탄핵소추권만을 부여하고 헌재가 탄핵의 최종 심판 권한을 갖도록 규정한 것은 국회의 자의적 탄핵 시도를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그런데도 거대 야당은 30차례 탄핵소추안을 발의 했고, 윤 전 대통령은 25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는 현재 우리 정치의 제도 붕괴와 규범 경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헌재의 결정문에서 보듯이 지금의 정치 위기 책임에서 어느 정치 세력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는 상대 정당이 아니라 국민을 보고 하는 것이다. 대통령도, 국회도 각각에게 주어진 헌법적 권한의 한계를 명심하지 않고 자제력을 잃으면 민주주의는 상처를 입는다.
◆尹 前대통령 “배신감”토로는 국민에게 실망감만
‘6‧3 대선’출마에 뜻을 둔 이철우 경북지사가 지난 10일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윤 전 대통령은 “막판에 기각에서 인용으로 결정이 뒤바뀐 것 같다”며 배신감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이날 윤 전 대통령은 구체적인 날짜까지 언급하며 ‘여러 분석을 봤지만 몇몇 헌법재판관이 막판에 결정을 바꾼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윤 전 대통령이 “결정이 바뀌었다”고 언급한 말을 유추하면 헌재 결정이 지연되면서 퍼졌던 ‘5 대 3 데드락 설’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진영에선 기각 또는 각하를 기대하며 “재판관 입장이 인용 5명, 기각·각하 3명으로 갈린 상황에서 헌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가설을 마치 사실로 여겼었다. 이러한 믿음의 연장선에서 보면, 지난 4일 헌재가 8명 재판관 전원 일치로 탄핵 인용 결정을 한 건 일부 재판관이 기각·각하에서 인용으로 마음을 바꾼 게 된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선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일축했다.
윤 전 대통령은 헌재 결정 뒤 구체적 승복 메시지 없이 “저는 대통령직에서 내려왔지만, 늘 여러분 곁을 지키겠다. 안타깝고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처신이 실망스러운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이 불법 계엄으로 인해 구속된 장군과 경찰 수뇌부 지휘관들, 고통받는 그 가족들에게 윤 전 대통령은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 자신은 서울구치소에서 구속이 해제되어 풀려나오면서 보여준 처신(차에서 내려 손을 흔들며 어퍼컷 제스처)은 상황에 걸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뻔뻔함의 극치였다.
골수 보수논객 조갑제 씨는 지난 8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대담에서 “윤 전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에서 헌재의 파면 판결까지 보여준 처신은 정치지도자가 아닌 ‘부정선거 악령’과 ‘5대3 악령’에 갇힌 사교 집단의 교주 형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조갑제 논객은 “4‧4 탄핵 심판은 협치와 존중은 사라지고 당리당략을 위한 이전투구만이 판을 치는 형태를 준엄하게 심판한 것인데, ‘6‧3 대선’을 앞둔 작금의 형태를 보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미래는 망국으로 가는 것 같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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