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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도쿄에 위치한 고향의 집을 방문하여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 고향의 집 도쿄 제공) |
[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 지난 11일 오후 4시 30분, 일본 도쿄도 고토구 시오하마(江東区塩浜1-4-48)에 위치한 '고향의 집(재일동포 노인의 집)'에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깜짝 방문하여 그랜드 피아노를 기증하는 서프라이즈 이벤트가 열렸다.
외부 참가자 없이 관계자들 만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피아노 기증식은 윤기 이사장의 환영인사에 이어 백건우 씨의 인사말과 피아노 싸인식 간담회 등 간소하게 치뤘다.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백건우 씨는 열 살의 나이로 국립교향악단과 함께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음악 신동으로 주목받았다. 15세 때는 벌써 미국 줄리아드 음악학교에 입학,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피아노의 천재성을 보였다.
현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평가되고 있는 그의 연주는 그만의 섬세한 음색, 극적인 감각, 매력적인 풍미 등 서정적인 피아니즘으로 전 세계의 청중들을 감동 매료시키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그의 예술적 업적을 기려 문예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여했고 한국 정부는 2010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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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건우 씨가 기증한 피아노에 싸인을 하고 있다. |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와 고향의 집 윤기 이사장은 피아노에 얽힌 사연이 있었다. 이야기는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기 이사장에 따르면 2015년 3월17일 도쿄에는 아직 벚꽃도 피지 않고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날 재일본대한민국민단 8층 홀에서는 고향의 집(재일동포 노인의 집) 도쿄 기공식이 있었다.
고향의 집 도쿄는 사카이, 오사카, 교토, 고베에 이어 5번째의 재일동포 보금자리였다. 마침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하여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를 초청하여 기념행사를 열었다.
내 마음 속에는 예전부터 가슴에 새겨진 문장이 하나 있었다. “한일 두 나라 사이에 파도가 높아지면 현해탄 한가운데서 잔잔하게 하실 분은 바로 당신입니다” 1964년 일본을 방문한 어머니에게 기시(岸信介) 전 일본 수상이 했던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우연히 백건우 씨의 피아노 연주를 보고 감탄했다. 피아노를 치는 음률적인 매력은 물론이거니와 그랜드 피아노를 본 적도 없는 섬마을 사람들을 위해 비행기로 피아노를 섬까지 운반하여 연주회를 하는 것이 아닌가. 예술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한 예술가의 진정성을 느꼈다.
한일 간에 높은 파도를 잡재워야 하겠다고 생각한 나는 백건우 씨를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수용 감독의 주선으로 만나게 되자 전부터 생각해온 음악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한일 우호를 위해 제가 밥상을 차리고 있습니다. 주일 한국 대사의 이름으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 관계자 2,000명을 초대하겠습니다. 메뉴는 백건우 씨와 피아노입니다. 출연료는 봉사로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만 파리에서 도쿄까지의 왕복 티켓과 호텔비용은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고 말하자 백건우 씨는 곧바로 “예술가로써 보람을 느낀다”고 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쾌히 승락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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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의 집 도쿄' 관계자들이 백건우 씨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2015년 3월, 백건우 씨는 부인 윤정희 여사와 함께 하네다공항에 도착했고 마중 나간 우리 부부는 공항에서 반갑게 만났다. 백건우 씨의 두툼한 손이 인상적이었다. 이 두툼한 손을 김수용 감독은 신의 손이라 했다.
윤정희 여사는 내 옆에 서 있는 아내를 보고 “부인이세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아닙니다. 저는 윤기 씨의 비서입니다.”라고 한국어로 답을 하자, 윤정희 여사도 “저도 백건우 씨의 비서입니다.”라고 말하며 활짝 웃음꽃을 피웠다. 천진난만하게 웃던 윤정희 여사는 “저는 음악이 없으면 못 살고, 백건우 씨는 영화가 없으면 못살아요.”라며 천생연분 부부사랑을 확인해주었다.
일본의 카네기홀로 알려진 산토리홀에서 백건우 선생은 오케스트라 반주도 없이 피아노 하나로 그 큰 장내를 압도시켰다. 광주 조선대학교 음악 교수 박계 씨는 “백건우 선생이 무대 인사를 하고 피아노 ‘도’ 음의 첫 건반을 누르는 순간 눈물이 났다”고 했다.
공연 후 백건우 부부, 유흥수 주일한국 대사, 일본 황실 히다치노미야비전하(常陸宮妃殿下)와 함께 차를 마시며 “한국 고아의 어머니라 불렸던 모친은 본래 음악 선생님이셨습니다. 음악으로 아이들을 치료하신 것처럼, 한일관계를 치료하고 싶어 백건우 선생을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백건우 선생이 파리로 떠나던 날 숙소였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가보니 한국에서 오신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신갑순, 김용원 한강포럼 회장 부부 등과 조찬을 하고 있었다. 백건우 선생은 나를 발견하고 “덕분에 성공했습니다.”고 말하며 테이블로 다가와 앉았다. 나는 봉투를 꺼내어 “저희 마음을 담았습니다. 함께 와주신 사모님께 선물을 준비 못해 죄송합니다. 오케스트라 없이 해주셔서 예산이 절감되어 선물 값을 마련했다”고 말하며 드렸다.
백건우 선생은 “약속이 틀리잖아요”하시며 나에게 다시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제 마음입니다.”하고 다시 밀었다. 그러자 백건우 선생은 “저에게도 마음이 있잖아요”하시며 내 앞으로 또다시 밀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충신교회 박종순 원로목사님께서 “고향의 집 도쿄에 백건우 선생 이름으로 피아노를 기증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라고 제안하셨다.
묘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더 돈을 보태어 그랜드 피아노를 구입하여 2016년 10월 17일 '고향의 집 도쿄' 준공과 함께 1층 지역교류 공회장에 설치했다. 그 후 피아노는 외롭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젠가 백건우 선생이 도쿄에 오실 때, 고향의 집 도쿄에서 피아노 기증식과 피아노에 사인도 받을 예정으로 마냥 기다렸다. 그러던 중 코로나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고향의 집에 기쁜 소식이 날라왔다. 2021년 7월 13일, 드디어 백건우 선생이 도쿄 긴자에서 연주를 위해 일본에 오신다는 소식을 신갑순 여사가 전해 주었다. 도쿄에 도착한 백건우 선생은 직접 전화를 걸어와 기쁜 만남과 함께 즉석 피아노 이벤트가 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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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고토구 시오하마의 강변에 위치한 '고향의 집' 도쿄 건물 |
고향의 집 도쿄를 처음 방문한 백건우 선생은 나에게 “사랑의 묵시록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윤학자 여사는 부모없이 방황하는 무수한 고아들을 데려다가 친자식과 함께 재우고 먹이면서 3000명의 자녀를 키우셨다. 자식 하나 키우기도 어렵다고 아예 안 낳는 이 시대를 생각하면 윤학자 여사는 성인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고향의 집’ 설립자 윤기 이사장은 한국에서 고아들을 위해 한평생을 보내신 모친 윤학자(田內千鶴子) 여사의 뜻을 이어, 목포 공생원에서 고아들을 자식처럼 돌봤다. 30여년 전부터는 재일교포 노인문제의 심각한 현실을 직감하고 일본에 노인복지시설 10개 건축을 목표로 혼신을 다하여왔다. 현재 일본의 도시 5개소에서 노인주거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고향의 집’에 들어서면 한국의 가구가 있고 한국의 그림이 있고 한국요리가 있다. 또한 한국 춤과 노래 등 한국전통예술공연도 자주 열어 타국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동포 노인들에게는 고향 집과 같은 보금자리다. 한국인의 정과 사랑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일본 속에 우리 민족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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