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 도쿄의 조용한 마을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일본인 미망인이 있다. 23세에 남편을 잃고 50여년을 한결같이 먼저 떠난 한국인을 가슴에 안고 살아왔다. 역도산은 그가 죽기 불과 6개월 전, 일본항공 소속 승무원 다나카 게이코와 결혼했다. 당시 역도산의 나이 39세였고 게이코는 2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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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 부인 다나카 게이코 여사가 로컬세계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승민 특파원 |
게이코는 요코하마의 호도가야에서 태어나 경찰관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다니다가 네기시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스튜어디스가 되겠다고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던 그 소녀의 꿈은 결국 역도산과의 만남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첫만남에 대해 궁금하다.
역도산과 첫만남은 땅 위에서가 아닌 구름 위에서였다. 당시 나는 일본항공사에서 국제선을 타는 스튜어디스였는데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과 승객으로 우연히 만났다. 기내에서 승객이 묻는 몇마디 질문에 성심껏 대답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 후 역도산은 항공사측으로부터 내 연락처를 알아내 데이트 요청을 해왔다. 선뜻 만난다는 것이 어색해 머뭇거렸지만 자주 요청해오는데 대한 보답으로 한번쯤 만나보겠다고 한 것이 결국 사랑으로 이어져 부부의 인연까지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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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디스시절 다나카 게이코. 게이코 여사 제공. |
역도산과 사귈 때 부모님의 반응은.
당시 아버지는 가나가와 경찰청 소속 치가사키경찰서장이었다. 내가 역도산과 사귄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심하게 반대하셨다. 프로 레슬러라는 직업이 너무 격하고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평범한 사람과 사귀기를 원하셨던 것은 부모로써 당연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반대와 17세의 나이 차이를 넘어 역도산을 사랑했고 스튜어디스 생활 2년만인 1963년 6월 5일 역도산과 결혼했다.
결혼식이 호화스러웠다던데.
결혼식은 도쿄에 있는 호텔에서 진행됐는데 일본 각지에서 하객들이 참 많이 찾아왔다. 그 많은 하객들을 대접해야 했으니 호화스러웠다는 말을 듣는 것도 당연했다. 당시 자민당 부총재였던 오노 반보쿠 부부를 비롯해 정계, 재계, 연예계, 스포츠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3000여명이 모여 축하해줬다. 총비용 1억엔(약 10억원)이 들었을 정도다. 신혼여행은 유럽과 미국을 돌다보니 1개월이 걸렸다. 여행 중 가방이나 옷이나 뭐든지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아낌없이 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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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6월 신혼여행 중 파리에서 역도산과 게이코. 게이코 여사 제공. |
가족은.
역도산과 결혼해 6개월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고 그 때 내 몸 속에서는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그와의 사이에서 딸이 태어났는데 딸은 불쌍하게도 아버지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자랐다. 그 딸은 지금 53세의 주부가 돼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올해 28세가 되는 손녀는 나처럼 한국과 인연이 있어서인지 아시아나항공사에서 스튜어디스로 일하고 있다. 손자는 26세로 미혼인 누나보다 먼저 결혼해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 손자는 현재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고교시절에는 야구선수로 유명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역도산과 같이 살던 당시에는 아카사카에 있는 리키아파트 8층 100여평을 살림집으로 사용했지만 갑자기 남편이 죽고 혼자가 되자 생활이 어려워졌다. 지금은 도쿄 도요쵸로 이사와 20여평 아파트에서 27년째 살아가고 있다.
월 1회 정도 사회단체 등에서 요청하는 강연회에 연사로 나가고 있고 주 4일 정도는 수이도바시에 있는 가게에서 옷을 팔고 있다. 남는 시간은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 골프를 치고 있다. 남편 역도산은 골프를 아주 좋아했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의 취미가 나의 취미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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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인이 된 다나카 게이코 여사가 유복자로 태어난 만 1살 된 딸과 함께. 게이코 여사 제공. |
역도산과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역도산을 만나면서부터 날마다 행복했다. 매일같이 우리들은 연인처럼 살았고 순간순간을 신혼처럼 살았다. 역도산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날 행복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역도산과 함께 한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스튜어디스시절 데이트를 하면서 6개월, 약혼을 하고 6개월, 결혼식을 올리고 6개월을 같이 살았다. 역도산과 함께 했던 시간은18개월이 전부이다. 꿈처럼 행복했던 시간은 순간이었다. 남편과의 추억들이 사무치도록 그립다.
역도산은 한국인이라는 것을 숨겨왔다고 들었다.
나와 결혼할 때까지도 주위에 자기가 한국인임을 숨기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일본 땅에 발을 디뎠을 당시 역도산의 꿈은 일본 스모계에서 최고의 승자가 되는 것이었다. 역도산이라는 이름도 스모를 시작할 때 지어진 이름이다. 스모는 일본 국적이 아니면 할 수가 없었기에 국적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역도산은 나에게 출생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조국마져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고 숨기면서 살아야 했던 고통이 얼마나 크고 힘들었을까 짐작이 갔다. 나도 같이 울었다. 당신의 입으로 숨김없이 진실을 말해줘 참으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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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골프장에서 골프를 마치고 역도산과 부인 다나카 게이코 여사의 화목한 모습. 게이코 여사 제공. |
한국인에게 한마디 하자면.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에 있다. 옆집이 싫다고 이사갈 수도 없다. 더이상 과거에 묶여 미래마져 어둡게 할 수는 없다. 어떤 이유라도 하나돼 한일간에 좋은 관계가 되어지길 바란다. 일본인들 중에는 한국을 미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인보다도 한국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로가 국가 이름만 내새우기보다는 역사적으로 고운정 미운정 숱한 사연을 같이 해온 양국의 국민들이 인간과 인간으로써의 좋은 관계를 맺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역도산의 부인으로써 양국의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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