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의 간곡한 부탁 “거사 실패하면 남아서 뒷일을 도모해달라”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1919년 초, 고종 독살설로 민심이 흉흉하던 서울의 밤. 남산 자락 아래 비밀스럽게 모인 사내들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중심에는 평안북도 정주의 정신적 지주이자 오산학교를 이끌던 문윤국(文潤國) 지사가 있었다. 그는 천도교와 기독교 지도자들이 결집하던 비밀 회동에서 이승훈, 함태영 등과 긴밀히 접촉하며 범민족적 독립운동의 밑그림을 그린 핵심 설계자였다.
당시 회동에서 문윤국은 단순한 참석자가 아니었다. 그는 "말뿐인 독립이 아니라, 목숨을 담보로 한 실천"을 강조하며 좌중을 압도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쓴 독립 서약서를 남겼을 만큼 그 기개가 뜨거웠다.
33인 명단에서 물러난 ‘최후의 보루’
문윤국 지사는 본래 민족대표 33인의 초기 구성원이었다. 기미독립선언서 초안에도 그의 이름은 당당히 올라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에게 '중앙의 주역'이 아닌 '현장의 사령관'이라는 다른 배역을 맡겼다.
결정적인 계기는 거사의 핵심 인물이었던 이승훈 장로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이 장로는 문윤국에게 “이번 거사가 실패할 경우, 뒷일을 도모해달라”는 막중한 책무를 맡겼다. 지도부가 일제히 체포될 상황을 대비해 조직을 재건하고 항쟁을 지속할 '최후의 보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문윤국은 자신의 이름을 내어주고 이명룡 장로와 김병조 목사를 대신 세우며, 실무적 후속을 기약하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
왜 서울이 아닌 ‘정주’였나
민족대표들이 서울 태화관에 모일 준비를 할 때 문윤국이 정주행 기차에 몸을 실은 데에는 세 가지 치밀한 전략적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혁명의 엔진’ 오산학교였다. 그가 세운 오산학교의 학생과 교사들은 언제든 독립군으로 전환될 수 있는 조직적인 ‘준비된 군대’였다.
둘째는 지정학적 요충지로서의 가치다. 정주에서 불길이 타올라야 평안도 전역과 만주 지역까지 항쟁의 신호탄을 보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엘리트 중심의 운동을 넘어 기독교 세력과 농민이 결합한 ‘민초의 폭발력’을 믿었다.
성경 표지 속에 숨긴 ‘해방의 복음’
1919년 2월 말, 서울에서 내려온 독립선언서 뭉치를 받아 든 문윤국의 운반책은 그가 평생 받들어온 성경책이었다. 그는 성경의 두꺼운 표지 안쪽을 정교하게 도려내 선언서를 끼워 넣었다. 일경의 삼엄한 가가호호 수색 속에서도 독실한 목회자의 성경 속에 제국주의를 무너뜨릴 ‘폭탄’이 들어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오산학교 지하실의 핏빛 태극기, 정주 장날의 희망이 되다
거사를 불과 며칠 앞둔 밤, 정주 오산학교에는 희미한 등잔불이 켜졌다. 창문을 담요로 겹겹이 막은 삼엄한 감시 속에서, 문윤국과 제자들은 숨소리조차 죽이며 태극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감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들은 주저 없이 손가락을 깨물었다. 자신들의 선혈을 섞어 태극의 붉은 면을 그려 넣었다. 가위질 소리 하나에도 목숨이 오가던 그 밤, 서로의 심장 소리에 의지하며 제작한 수백 장의 ‘혈제(血製) 태극기’는 독립을 향한 결사 항전의 의지 그 자체였다. 문윤국의 유서 《학업과 경력》에는 이러한 긴박했던 정황과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태극기가 우리의 수의(壽衣)가 될지언정"
모든 준비를 마친 문윤국은 제자들의 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기도했다.
"주여, 이 깃발이 내일 정주의 하늘에 휘날릴 때, 우리 민족의 눈물을 닦아 주소서.
이 태극기가 우리의 수의가 될지언정 결코 굴복하지 않게 하소서."
그에게 독립운동은 곧 신앙의 완성이었다. 기도를 마친 그는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한 채 정주의 새벽 공기를 들이켰다. 이제 곧 이 고요한 도시는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참이었다.
정주 땅을 뒤흔든 노도와 같은 함성
1919년 3월 7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아이포(阿耳浦) 장날. 5일장의 활기 대신 그날의 아이포는 폭풍전야의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장꾼들의 지게 속, 아낙들의 치맛자락 안에는 전날 밤 피로 그려낸 태극기들이 숨겨져 있었다. 무리의 선두에는 마침내 성경책에서 독립선언서를 꺼내 든 문윤국 지사가 서 있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문윤국은 장터 한복판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그의 목소리는 사자후가 되어 정주 땅을 파고들었다. 낭독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포 장터는 하얀 광목천과 핏빛 태극 문양으로 뒤덮였고, 하늘을 뒤흔드는 만세 함성이 노도와 같이 터져 나왔다.
일제의 총칼에 맞선 비폭력의 힘
일본 기마헌병들이 칼을 휘두르고 총성이 하늘을 갈랐지만, 문윤국의 대열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일경의 총구 앞에서도 "비겁하게 고개를 숙이지 마라!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 이 나라의 주인이다!"라고 외치며 행진을 독려했다. 그의 기개에 압도된 일본 순사들조차 선뜻 그를 베지 못하고 주춤거릴 정도였다.
정주에서 시작된 이 불씨는 압록강 너머 만주벌판까지 전해졌다. 현장에서 체포되면서도 문 지사는 곁의 제자에게 말했다.
"보아라, 저들이 우리 몸은 묶을 수 있어도, 이미 터져 나온 저 함성은 결코 가두지 못할 것이다."
이어 제6회는 "철창 너머의 기도" - 체포된 문윤국 지사의 혹독한 옥중 고난과 감옥 안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교육 철학 및 독립을 향한 집념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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