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정 칼럼] 전통적 공기원근법에서 색채공기원근법으로
이태술 기자
sunrise1212@hanmail.net | 2026-10-23 14:05:03
미술사에서 공기원근법 또는 대기원근법은 대기를 통과하면서 원경의 사물이 가까운 대상보다 옅고 푸르게 보이며, 세부와 명암 대비가 감소하는 시각적 현상을 회화적으로 이용해 공간의 깊이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나의 회화에서 공기는 단순한 ‘거리의 효과’가 아니다.
나는 공기를 하나의 회화적 주체로 받아들인다. 원경의 하늘과 바다가 아련한 푸른색으로 물러나는 것은 단순히 멀리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곳에는 빛이 통과하고, 시간이 머물며, 공간의 밀도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근경의 들과 나무, 사물들이 짙고 강한 색채로 다가오는 것은 단순히 가까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들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닿아 있는 생명의 밀도와 존재의 온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색채는 거리의 색채이면서 동시에 존재의 색채이고, 공간의 색채이면서 동시에 시간의 색채이다. 이 지점에서 나의 회화는 전통적인 공기원근법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나는 현실의 대상을 세밀하게 재현하는 것보다 색채의 명도와 온도, 그리고 서로 다른 색의 울림을 통해 내면의 정신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실제 자연이 지닌 색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는 내가 자연 속에서 강하게 느낀 색을 선택하고, 그것을 화면 안에서 다시 변형한다. 어떤 대상은 보다 밝게 열어 보이고, 주변의 풍경은 낮은 명도의 색으로 단순화한다. 그 과정에서 대상의 구체적인 모습은 조금씩 뒤로 물러난다. 대신 색과 빛, 공간과 공기의 흐름이 앞으로 다가온다. 내가 그리는 것은 객관적인 현실 그 자체라기보다 현실을 바라보며 생겨난 나의 감정과 정신적 기반에 의한 반응이다.
그러므로 나의 풍경은 자연을 재현한 풍경이라기 보다는 비가시적인 풍경인 동시에 내면의 풍경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색채공기원근법’이라고 명명하고 나의 조형적 언어로 오랫동안 탐구해 왔다. 멀리 있는 것은 희미하고 가까이 있는 것은 선명하다는 단순한 시각적 원리를 넘어, 공기와 빛이 공간 사이를 흐르면서 사물의 존재감을 변화시키는 과정에 주목하였다. 그 속에서 풍경은 고정된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라지며 다시 태어나는 존재가 된 것이다.
현기증 나는 산업사회의 삶은 복잡하다. 사람들은 수많은 관계와 규칙, 속도와 경쟁 속에서 살아가며 때로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조차 잊는다. 나는 그러한 삶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바다를 바라보고, 바람이 지나가는 들판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림이 그러한 멈춤의 시간이 생명적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훈정 프로필
-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전공 졸업
-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 수료
- 개인전 43회 개최(세종문화예술회관, 롯데갤러리, 문화일보갤러리 등)
-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 및 &찾아가는 미술관& 전국순회전 참여(2001~2007)
- CTS 신앙·예술 다큐멘터리 및 &길(WAY)& 시리즈 방영(2004)
- 세종문화회관 한국미술전, World Korea 지상초대전, 조선일보미술관 초대전, 가고시마 문화교류전 등 참여
- 해외전 33회, 국내 전시 1,300여 회 출품
- 대한민국미술대전, 신미술대전, 세계평화미술대전, 호남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초대작가(1996~2005)
- 예원예술대학교 회화과 객원교수 및 겸임교수(2003~2010)
- 국제미술레전드대상 초대전 최우수상 수상((사)한국언론사협회, 2026.3.19)
- 현재 활발한 작품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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