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은 말의 해이니, 말처럼 역동적인 한 해를 맞이하라고 인사하면서, 병(丙)이 붉은색을 뜻하니 붉은 말의 해라고 하며 적토마 이야기를 한다. 적토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며, 천리를 달리고 나면 몸에 피를 흘리면서도 건재하다고 한다. 하지만 적토마가 흘리는 것은 피가 아니라 땀일 뿐이다. 적토마가 빨간색 털을 가지고 있어서 그 털에 땀방울이 맺혀 흐르다 보니 그게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 건재한 것이다.
그런 적토마는 어느 소설이나 기록에서든 명마로 등장하고, 말을 아는 사람은 물론 말을 잘 모르더라도 누구든 한 번 타 보거나 그냥 이라도 보고 싶게 만드는 말이다.
우리 중에서 많은 이들은 적토마 하면 으레 여포와 관우를 생각한다. 조조에게 패해 죽은 여포의 적토마를 조조가 관우를 회유하기 위해서 관우에게 주었다는 <삼국지연의〉의 이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비록 명작이라고는 하지만, 일개 중국 소설에 지나지 않는, 우리에게 흔히 <삼국지>라고 알려진 <삼국지연의>의 적토마에 휘말려 정작 우리가 기억해야 할 더 소중한 적토마는 잊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정말로 우리가 소중하게 기억해야 할 적토마는 허구의 세상인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관우와 여포의 적토마가 아니라, 실존하는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랑스럽고 위대한 역대 왕 중 한 분으로 기록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비운의 세자로 기록된 소현세자가 타고 달리던 적토마다.
소현세자는 병자호란의 처절한 패배의 끝을 삼배구고두례로 마무리하는 바람에, 아버지 인조의 이마가 터져 피가 철철 흐르는 데에도 청나라 황제가 머리를 땅에 찧는 소리가 작다고 하면 한 번 무릎을 꿇을 때마다 세 번 머리를 조아리며 머리를 땅에 찧기를 반복하여, 세 번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바닥에 찧기를 수십 번 반복하는 처참한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본 세자다. 힘도 없으면서 허세에 가득 찬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를 스스로 체험한 것이다.
청나라가 질풍처럼 달려와 왕과 백성들의 목숨이 촌각을 다투고 조정은 바람 앞에 등잔불처럼 위기에 봉착하게 되자, 맞서 싸워볼 생각도 못 하고 강화도로 도망하려다가 눈이 많이 와서 그마저도 못하자 남한산성으로 피한 게 조선의 왕과 조정이다. 그러면서도 인조는 물론 조정의 많은 신료는 청나라를 오랑캐라 부르면서 무시하였다.
청나라가 질풍처럼 달려와 한양 함락이 눈앞에 이르자 인조는 최명길에게 화친을 논의하며 시간을 끌어 볼 것을 명했다. 최명길은 적진으로 가서 화친에 대해 논한 후 돌아와 적이 왕제(王弟) 및 대신을 인질로 삼기를 요구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기껏 한다는 것이 오랑캐에게 왕의 동생과 대신을 보낼 수 없으니, 급이 낮은 자를 보내서 적의 눈을 속이자는 것이었을 뿐 더 이상의 대책은 없었다. 결국 종친 중에 능을 지키던 정4품인 능봉수(綾峯守) 이칭(李偁)을 정1품 능봉군으로 격상시키고 왕의 동생으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형조판서 심집(沈諿)을 대신의 직함으로 가칭(假稱)하여 청나라 진영으로 가서 강화를 의논하였다. 하지만 정묘호란 당시 화친을 위한 조약 중 하나가 왕자를 볼모로 보내기로 했음에도, 인조는 급히 성종의 14남 운천군 이인의 증손자로 인조에게는 숙부뻘 항렬인 종친부의 종5품 원창부령 이구를 원창군으로 봉해 왕의 동생이라고 속여 볼모로 보낸 전력이 있는 것을 알고 있던 청나라였다. 분명히 또 속일 것이라는 생각에 이구가 진짜 왕제(王弟)이며, 심집이 진짜 대신인가를 묻자 심집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통역으로 동행한 박난영(朴蘭英)에게 묻자, 박난영이 둘 다 진짜라고 답하니, 청나라가 크게 노하여 난영을 죽였다. 그리고 강화를 논할 상대를 격상하여 ‘세자를 보내온 뒤에야 강화를 의논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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