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가 나와야 강화를 논의할 수 있다는 청나라의 요구를 전해 들은 조선 조정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난리를 쳤다. 하지만 소현세자가 보기에는 말이 안 된다고 난리를 치는 조정 신료들이 더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백성들은 그대로 버려둔 채 강화로 도망치려다가 눈이 와서 남한산성에 갇혀 화친을 청하면서도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왕의 동생과 대신을 가짜로 보내는 것이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오랑캐에게 왕과 대신을 보낼 수 없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오랑캐의 기준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당장 백성들은 나라만 믿고 있다가 죽어 나가는 판에, 왕도 아니고 왕의 동생이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 강화를 논의하러 나가는 것이 무엇이 문제이며, 대신이라는 것은 당연히 국난이 일어나면 앞장서서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자리이거늘, 그가 강화 회담을 위해서 적진으로 가는 것이 왜 말이 안 되고 문제가 무엇인지가 정말로 궁금하기까지 했다. 명분만 앞세우는 조정 신료들의 모습에서 왜 지금 백성은 물론 왕실과 조정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보는 것 같았다.
남한산성에 갇힌 채로 기껏 한다는 것이 오지도 않을 명나라 구원병 타령과 지방에서 의병을 일으켜 노도처럼 몰고 올라와 주기를 바라는, 꿈같은 바람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화친하자, 안된다, 오랑캐와 무슨 화친이냐를 반복하며 세월만 보내던 와중에도 살아 나갈 구멍은 만들어야 했던지, 화친을 주선하여 달라는 청탁과 함께 역관인 정명수에게 은 1,000냥을, 적장 용골대와 마부대에게 은 3,000냥씩을 보냈다.
쓸데없는 논쟁만 반복하면서 시간만 보내며 구원병을 기다렸으나 구원병은 얼마 오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1592년에 시작된 왜놈들과의 전쟁이 무려 7년을 넘게 끌다가 1598년에 적장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고맙게도 죽어 주는 바람에 겨우 막을 내렸다. 그리고 불과 29년만인 1627년에 후금이라는 이름으로 청나라가 밀고 내려와 강토와 백성을 유린할 때도 맥없이 당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10년도 안 되어 다시 밀고 내려와 강토와 백성들을 초토화하고 있으니, 구원병이라는 것이 백성들의 의병에 기대고 있는 판인데 싸울만한 이들은 지난 수차의 전란으로 이미 많이 죽어 나갔고, 그나마 남은 젊은이 중에 용기를 내서 일어난 구원병이라 해도 조직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오다가 적과 조우하면 그대로 패하여 전사하거나 간신히 목숨만 구해서 달아나기 일쑤였다.
어릴 때 잔혹하기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왜놈의 난을 겪은 이들은 젊어서 두 번 연달아 뙤놈들의 난을 겪어야 하고, 젊어서 왜놈의 난을 겪은 이들은 이제 늘그막하게나마 평화롭게 살만하니까 연달아 뙤놈의 난을 두 번이나 겪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피로 물든 강산 역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어 농작물이 자라기 힘들 정도로 황폐해졌다. 그 바람에 연일 지속되는 흉년으로 인해서 가축은 물론 들과 산의 짐승들마저 눈에 띄면 잡아먹어야 살 판임에도, 그나마 가축이 없으면 더더욱 농사를 지을 수 없어 겨우겨우 기본만 살려 놓고, 들과 산의 짐승들은 눈에 보이면 무조건 목숨을 걸고라도 잡아먹는 판이다 보니, 가축이나 들과 산의 짐승들도 전쟁이라면 치를 떨고 있었다.
먹고 살 것이 없어 백성들은 나라에 대한 불만만 쌓여가고 있는 것은 물론이요, 어쩌다 구원병을 자원하는 이들도, 사기는 발아래로 떨어진 상태였다. 구원병 자체를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였다. 백성들은 무조건 왕과 조정을 믿고 따를 것이라고 확신하여 구원병을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그랬다면 그야말로 백성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밥만 축내는 개, 돼지처럼 살아가는 무리라고 얕잡아 본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위정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나라가 해 주는 게 있어야 백성에게 무언가를 기대해도 부끄럽지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에게 무언가를 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백성들을 힘들게만 했다는 것을 알기나 한다면 백성들에게 기대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빤한 결과가 눈에 보이는 데도 파당에 얽매여 서로를 헐뜯느라고 대책도 못 세우고 명분만 내세우며 외교를 잘 못하는 바람에 자고 나면 전쟁이었다. 그럼에도 의병을 일으켜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서 구름처럼 몰려오기만 기다리는 조정이 뻔뻔한 건지 아니면 정말 철이 덜 난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음 호에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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