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산책 ⑧] 오차노미즈(御茶ノ水), 신들이 머무는 언덕과 청춘의 악보가 흐르는 계곡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4-21 17:42:34

장군의 갈증을 달랜 '명계(茗溪)'의 발원지
일본의 '칼치에 라탄', 지성과 의료의 거리
청춘의 악보와 카레 향이 머무는 거리
늪지에서 태어난 ‘천하의 명원’
쇼군 이에미쓰와 명장 도쿠다이지 사베에
쇼군이 배를 타고 입성하던 ‘오후네이리(お舟入り)’
고이시가와 고라쿠엔. 사진 이승민 특파원.

[로컬세계 = 글 사진 이승민 특파원] 우에노의 시끌벅적한 활기를 뒤로하고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도쿄 도심 한복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깊은 계곡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오차노미즈(御茶ノ水)다. 이곳은 행정상의 공식 지명은 아니지만, 스루가다이(駿河台)와 소토간다(外神田), 그리고 분쿄구 유시마와 혼고 일대를 아우르는 도쿄의 상징적인 문화 구역이다.

장군의 갈증을 달랜 '명계(茗溪)'의 발원지

오차노미즈라는 이름의 유래는 명확하다. 에도 막부의 2대 장군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인근 고린지(高林寺)의 샘물로 끓인 차를 마시고 그 맛에 반해, 이후 이곳의 물이 장군의 찻물로 봉헌되면서 '오차노미즈(찻물의 샘)'라 불리게 되었다.

본래 이곳은 '간다산(神田山)'이라 불리던 하나의 구릉지였으나, 에도 막부가 수해 방지와 에도성 외곽 해자를 겸해 거대한 굴착 공사를 단행하며 지금의 인공 계곡 지형을 탄생시켰다. 이 덕분에 만들어진 '찻물의 골짜기', 즉 명계(茗溪)라는 우아한 별칭은 오늘날까지도 주변 상점과 학교의 동창회 명칭 등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일본의 '칼치에 라탄', 지성과 의료의 거리

오차노미즈는 명실상부한 일본 최대의 학생가다. 메이지대학, 일본대학, 도쿄과학대학, 준텐도대학 등 유서 깊은 교육기관들이 밀집해 있어 프랑스 파리의 대학가 '칼치에 라탄(Quartier Latin)'에 비견되기도 한다.

또한 일본대학 병원을 비롯해 굴지의 의료기관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지성과 생명에 대한 경외가 거리 곳곳에 스며있다. 한때 버블 경제 시기에는 1제곱미터당 2,200만 엔이라는 기록적인 지가를 기록하며 일본에서 가장 비싼 땅 중 하나로 군림했던 이곳은, 지금도 여전히 도쿄의 중심부로서 그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청춘의 악보와 카레 향이 머무는 거리

오차노미즈역 앞 '메이다이 거리(明大通り)'를 걷다 보면 독특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일본 최대 규모의 악기점 거리다. 1941년 다니구치 악기의 이전을 시작으로 형성된 이 거리는 포크송, 일렉 기타, 비주얼계 밴드 붐을 거치며 음악 청춘들의 성지가 되었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외톨이 더 록!》의 배경지로 알려지며 젊은 세대의 발길이 다시금 뜨거워지고 있다.

허기진 학생들의 배를 채워주던 카레 역시 이곳의 빼놓을 수 없는 문화다. '간다 카레 그랑프리'가 열릴 정도로 카레 명점이 즐비하며, 일본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유서 깊은 스타벅스 매장과 노포 카페들은 방문자들에게 달콤한 휴식을 선사한다.

세 개의 신앙이 교차하는 '문화의 언덕'

오차노미즈는 종교적 숭고함이 공존하는 구역이기도 하다. 에도의 총수호신인 간다 묘진(神田明神)의 붉은 위용, 유교의 성인 공자를 모신 유시마 성당(湯島聖堂)의 검은 장엄함, 그리고 러시아 정교회의 이국적인 돔이 돋보이는 니콜라이 당이 삼각형을 이루며 자리 잡고 있다. 유교와 신토, 그리고 기독교가 한 언덕 위에서 공존하는 이 풍경은 도쿄가 가진 문화적 포용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앙선(주오선)과 마루노우치선 열차가 강 위아래로 교차하는 '오차노미즈교' 위에서 간다강의 물줄기를 바라본다. 장군에게 바치던 맑은 샘물은 이제 청춘들의 땀방울과 악기 소리가 섞인 거대한 강물이 되어 흐른다. 이 지층의 역사는 물길을 따라 이웃한 고이시카와 고라쿠엔으로 이어진다.

 [이어지는 산책] 장군과 번주가 함께 빚은 에도의 명원, 고이시카와 고라쿠엔(小石川後樂園)

도쿄 도심의 화려한 마천루와 도쿄돔의 거대한 지붕 사이, 시간의 흐름을 비껴간 듯한 울창한 숲이 있다. 바로 ‘고이시카와 고라쿠엔’이다. 이곳은 단순히 아름다운 정원을 넘어, 에도 시대 초기 권력의 핵심이었던 쇼군과 다이묘가 예술적 교감을 나누며 빚어낸 역사적 결정체다.

늪지에서 태어난 ‘천하의 명원’

오늘날 도쿄돔 시티가 들어선 자리는 본래 미토 도쿠가와 가문의 에도 상야시키(上屋敷)였다. 1629년, 미토 번의 시조 도쿠가와 요리후사는 이곳의 굴곡진 지형과 늪지, 고목들이 정원을 조성하기에 최적이라 판단하고 쇼군에게 청하여 대지를 하사받았다.

당시 고이시카와 주변은 간다강이 흐르고 에도 시민들의 젖줄인 신다 상수도가 지나는 물의 요충지였다. 요리후사는 인위적인 변형 대신 자연 지형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을 택했다. 가신들의 지휘 아래 그해 3월 착공된 정원은 9월경 그 기틀을 완성했다.

쇼군 이에미쓰와 명장 도쿠다이지 사베에

고라쿠엔의 완성에는 제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徳川家光)의 깊은 관심이 있었다. 이에미쓰는 요리후사와 취미를 공유하며 직접 정원의 연못 형태를 지도하거나 이즈의 귀한 정원석을 하사하기도 했다.

실질적인 조영을 담당한 도쿠다이지 사베에(徳大寺左兵衛)는 쇼군 가문을 모시던 인물로, 뛰어난 심미안을 갖춘 현장 감독이었다. 그가 고심 끝에 세운 연못 안 섬의 거석은 요리후사가 그의 공로를 치하하며 ‘도쿠다이지 이시(徳大寺石)’라 명명하여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전해진다.

쇼군이 배를 타고 입성하던 ‘오후네이리(お舟入り)’

쇼군 이에미쓰는 매사냥을 나갈 때마다 이곳을 즐겨 찾았다. 특이한 점은 정원 출입 방식이다. 당시 정원 남쪽의 간다강은 수심이 깊어 배가 다닐 수 있었다. 이에미쓰는 간다강에서 작은 배로 갈아탄 뒤, 정원과 연결된 전용 수로를 통해 정원 안으로 직접 배를 타고 들어왔다.

이른바 ‘오후네이리(お舟入り)’라 불리는 이 입구는 쇼군과 미토 번주 사이의 각별한 유대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이에미쓰는 정원 완성 후 총 6차례나 이곳을 방문해 뱃놀이를 즐기며 정무의 피로를 풀었다.

유교적 철학으로 완성된 이름 ‘고라쿠(後樂)’

정원의 정신적 깊이를 더한 것은 2대 번주 미쓰쿠니다. 그는 명나라 유학자 주순수를 초빙하여 정원의 이름을 짓게 했다. 《악양루기》의 "천하의 근심은 남보다 먼저 걱정하고, 즐거움은 나중에 즐긴다"는 구절에서 따온 이름에는 위정자의 애민 정신이 깃들어 있다. 주순수는 원월교와 서호 제방 등 중국식 경관을 설계하여 동아시아 미학이 공존하는 풍경을 완성했다.

에도 초기의 역동적인 정치 현장이자 문화의 용광로였던 이곳은, 이제 도심 속의 허파가 되어 우리에게 옛 현인의 가르침을 소리 없이 전한다. 현대적인 도쿄돔의 곡선과 에도 정원의 정취가 맞닿은 이곳에서, 시대를 넘나드는 산책을 즐겨보길 권한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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