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정 칼럼] 빛을 향한 마음, 공기원근법의 풍경
이태술 기자
sunrise1212@hanmail.net | 2026-09-10 17:21:53
나의 풍경은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눈앞에 놓인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그 너머에 있는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하늘과 바다, 들과 나무가 한 화면 안에 놓여 있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단순한 자연의 형상이 아니라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이다.
화면의 먼 곳,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수평선은 아린 듯 옅은 푸른빛으로 밝게 열어 놓는다. 반면 중경의 바다와 가까이 다가온 들, 나무와 사물들은 상대적으로 어두운 색조로 가라앉힌다. 이러한 명도의 대비는 단순히 밝고 어두움의 조형적 효과를 위한 것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빛, 그리고 그 빛을 향해 열리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보는 그 빛은 자연의 한순간에 머무는 빛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적 의미에서의 ‘서광’이기도 하다. 어둠을 지나 새롭게 열리는 빛처럼, 우리의 삶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에게 어둠은 절망의 끝이 아니라 빛을 더욱 깊이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나는 현실의 대상을 세밀하게 재현하는 것보다 색채의 명도와 온도, 그리고 서로 다른 색의 울림을 통해 내면의 정신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실제 자연이 지닌 색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는 내가 자연 속에서 강하게 느낀 색을 선택하고, 그것을 화면 안에서 다시 변형한다. 어떤 대상은 보다 밝게 열어 보이고, 주변의 풍경은 낮은 명도의 색으로 단순화한다.
그 과정에서 대상의 구체적인 모습은 조금씩 뒤로 물러난다. 대신 색과 빛, 공간과 공기의 흐름이 앞으로 다가온다. 내가 그리는 것은 객관적인 현실 그 자체라기보다 현실을 바라보며 생겨난 나의 감정과 정신의 반응이다. 그러므로 나의 풍경은 자연을 재현한 풍경이면서 동시에 내면의 풍경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공기원근법’이라는 나의 조형적 언어로 오랫동안 탐구해 왔다. 멀리 있는 것은 희미하고 가까이 있는 것은 선명하다는 단순한 시각적 원리를 넘어, 공기와 빛이 공간 사이를 흐르면서 사물의 존재감을 변화시키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 속에서 풍경은 고정된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라지며 다시 태어나는 존재가 된다.
현대의 삶은 복잡하다. 사람들은 수많은 관계와 규칙, 속도와 경쟁 속에서 살아가며 때로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조차 잊는다. 나는 그러한 삶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바다를 바라보고, 바람이 지나가는 들판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림이 그러한 멈춤의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훈정 프로필-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전공 졸업
-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 수료
- 개인전 43회 개최(세종문화예술회관, 롯데갤러리, 문화일보갤러리 등)
-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 및 &찾아가는 미술관& 전국순회전 참여(2001~2007)
- CTS 신앙·예술 다큐멘터리 및 &길(WAY)& 시리즈 방영(2004)
- 세종문화회관 한국미술전, World Korea 지상초대전, 조선일보미술관 초대전, 가고시마 문화교류전 등 참여
- 해외전 33회, 국내 전시 1,300여 회 출품
- 대한민국미술대전, 신미술대전, 세계평화미술대전, 호남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초대작가(1996~2005)
- 예원예술대학교 회화과 객원교수 및 겸임교수(2003~2010)
- 국제미술레전드대상 초대전 최우수상 수상((사)한국언론사협회, 2026.3.19)
- 현재 활발한 작품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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