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내 안의 시집간 딸
최종욱 기자
vip8857@naver.com | 2026-09-20 13:15:49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 부모의 품에서 사랑과 온기를 받으며 자란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사랑을 누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미처 알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부모가 되어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비로소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부모의 품에서 사랑받던 자식이 어느새 누군가를 품고 책임지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권리자로 살아가던 사람이 의무자가 되고, 그 자식은 다시 새로운 권리자가 되어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순리인지도 모르겠다.
몇 해 전, 시집간 딸아이가 펑펑 울면서 친정집을 찾아왔다. 집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서러운 마음이 복받치자 한걸음에 달려왔던 모양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엄마 아빠를 꼭 끌어안고 한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딸아이를 바라보며 아비의 마음은 참으로 묘했다. 안쓰럽기도 했고 짠하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이제 정말 딸아이가 부모의 품을 떠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저려왔다.
돌이켜보면 우리 부모 세대만 하더라도 시집을 가면 낯선 시댁에서 겪는 서러움과 어려움을 속으로 삭이며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우리 세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훌쩍 자라 한 가정을 꾸린 딸아이가 부모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니, 나이 든 아비의 마음도 함께 무너지는 듯했다.
살던 둥지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기쁨도 있겠지만, 익숙했던 가족과 집을 떠나 낯선 환경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도 클 것이다. 앞으로의 삶을 스스로 가꾸어가야 한다는 기대와 두려움이 한꺼번에 담겨 있었을 딸아이의 눈물 앞에서 아비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아 그저 꼭 안아주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힘들 때 언제든 돌아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부모의 품이라는 사실만 전해주고 싶었다.
가수 최백호의 노래에는 자식을 떠나보내는 아비의 마음을 담은 듯한 대목이 있다. 가뭄에 말라 갈라진 논바닥 같은 가슴, 비바람 몰아치는 텅 빈 벌판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 같은 마음. 아장아장 걷던 걸음마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훌쩍 자라 내 곁을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식이 언젠가 부모의 품을 떠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부모 역시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자식을 떠나보내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자식이 힘들 때 대신 아파줄 수도,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기에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잘 살아가기를 바라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 기댈 수 있도록 자리를 지켜주는 것. 그것이 자식이 어른이 된 뒤 부모에게 남겨진 사랑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후회를 한다. 조금 더 잘해줄 걸, 그때 한마디라도 더 따뜻하게 말해줄 걸 하는 아쉬움이 마음에 남는다. 어쩌면 인생의 시작과 끝을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모든 과정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은 담담하게 인생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종교를 찾고, 명상을 하며,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도 어쩌면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고 삶의 평정을 찾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하지만 부모가 되어 살아보니 꼭 거창한 답을 찾아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자식이 잘되면 함께 웃고, 힘들어하면 말없이 곁을 내어주는 것. 멀리 떠나면 잘 지내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가끔 찾아오면 반갑게 품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부모의 사랑은 충분히 깊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이제 딸아이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고, 아비인 나 역시 딸아이의 모든 삶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 어느 곳에 있든 힘들고 지칠 때 돌아오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맞아주는 부모가 되어주는 것.
한때 부모의 품에서 사랑을 받던 아이였던 내가 이제는 자식의 삶을 바라보는 부모가 되었다. 그렇게 권리자와 의무자의 자리는 세월을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어간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이어가는 것은 결국 사랑일 것이다.
오늘도 아비는 딸아이의 눈물을 마음 한켠에 품는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나 역시 자식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부모의 사랑에는 졸업이 없으니까.
최종욱 기자 vip88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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