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⑮] 문선명과 지미 카터, 위기의 정면충돌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2-13 09:15:23

주한미군 철수와 ‘안보관’의 충돌
'코리아게이트'와 기획된 종교 탄압의 서막
박보희의 항변과 드라마틱한 청문회
카터 시대의 유산, 댄버리 교도소 수감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을 만나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1970년대 후반, 격동의 미 대륙 현장에서 인류의 평화와 안보를 염원했던 문선명 총재와 도덕 외교를 앞세운 지미 카터 대통령의 만남은 '신념의 격돌' 그 자체였다.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세계를 수호하려 했던 문 총재의 섭리적 결단과 카터 행정부의 편협한 정책이 빚어낸 갈등은 단순한 정치적 대립을 넘어 종교 자유 수호를 위한 거룩한 투쟁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와 ‘안보관’의 충돌 

두 인물의 가장 큰 갈등 지점은 한반도 안보였다. 카터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주한미군 단계적 철수를 내걸며 박정희 정부의 인권 문제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대해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문 총재는 즉각 반기를 들었다.

문 총재는 미국 내 조직과 매체를 총동원해 “카터의 정책은 한반도를 공산주의의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통일교 유관 단체들은 워싱턴 D.C.에서 대규모 미군 철수 반대 시위를 주도하며 카터 행정부의 외교 노선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주장을 넘어 미 보수 진영의 안보 논리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정치적 목소리로 작용했다.

'코리아게이트'와 기획된 종교 탄압의 서막

1970년대 후반, 미 연방 의사당을 뒤흔든 최대의 스캔들은 단연 ‘코리아게이트(Koreagate)’였다. 박정희 정부의 대미 로비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구성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소위원회, 일명 ‘프레이저 위원회’는 1978년 10월 31일, 447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한미 관계 역사상 가장 어두운 단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양국 관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카터 행정부는 문 총재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며 사법적 압박이라는 칼날을 빼 들었다. 이른바 '프레이저 위원회'를 통한 조사와 '코리아게이트' 연루 의혹 제기는 사실상 통일교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아 한국 정부를 길들이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기 시작된 IRS(국세청)의 고강도 표적 수사는 훗날 문 총재를 댄버리 교도소로 몰아넣은 '댄버리 사건'의 뿌리가 되었다. 당시 수천 명의 기독교 목사들이 문 총재를 옹호하며 "정부가 종교 내부의 자금 운용에 개입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종교 자유를 짓밟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이 사건이 지닌 불의함을 방증한다.

박정희 정부의 버티기 3가지 전략 

프레이저 보고서가 공개되자 서울의 청와대는 비상이 걸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보고서를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치욕적인 문서로 간주했다. 당시 한국 정부의 대응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첫째는 ‘철저한 부인’이었다. 정부는 박동선이나 통일교를 통한 로비가 정부의 조직적 지휘 아래 있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부인하며, 이들의 활동을 개인적인 차원의 일로 치부했다. 

둘째는 ‘미국 내 친한 인맥 가동’이었다. 보고서의 파괴력을 줄이기 위해 미 보수 정객들을 설득하며 프레이저 위원회의 편향성을 공격했다. 

셋째는 ‘반미 감정의 활용’이었다. 국내 언론을 통해 미국의 조사가 내정 간섭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 했다.

통일교, 종교를 넘어선 정치 조직으로의 규정

프레이저 보고서의 상당 부분은 문선명 총재와 통일교의 활동에 할애되었다. 도널드 프레이저 위원장은 통일교를 단순한 종교 단체가 아닌, 한국 정부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설립된 고도의 정치 기구로 보았다. 위원회는 통일교가 한국 중앙정보부의 지휘를 받으며 미국 내에서 반공 활동을 전개하고 친한 여론을 형성하는 이른바 ‘프런트 조직’ 역할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보고서는 문 총재가 종교적 권위를 바탕으로 전 세계를 통치하는 ‘신정 정부’ 수립을 기획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또한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모금된 막대한 자금이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미국으로 유입되었으며, 이 자금이 한국 내 방위산업체 운영과 연계되어 한국 정부와의 밀착 관계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는 점을 상세히 기록했다.

로비의 전말과 ‘백악관 작전’의 실체

조사의 핵심은 한국 정부가 미 의원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공여하며 한국군 철수 반대 및 경제 원조 확대를 꾀했다는 의혹이었다. 로비스트 박동선은 그 중심 인물로 지목되었으며, 위원회는 한국 중앙정보부(KCIA)가 ‘백악관 작전’이라는 명칭 아래 조직적으로 미 정가에 침투하여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하려 했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주권 국가 간의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넘어선 불법적인 공작으로 규정되었다.

박보희의 항변과 드라마틱한 청문회

1978년 미 하원 청문회장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인물은 단연 박보희 회장이었다. 그는 문선명 총재의 대변인으로서 프레이저 위원장의 날 선 질문에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박 회장은 준비해 온 원고를 읽어 내려가며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미국을 사랑하며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위원회를 향해 “당신들의 조사는 공산주의자들의 사주를 받은 종교 탄압”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특히 그는 프레이저 위원장을 직접 지목하며 “당신은 사탄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 증언은 당시 미국 전역에 중계되며 큰 논란을 일으켰고, 통일교 신도들에게는 ‘진리를 수호하는 용기’로, 비판론자들에게는 ‘광신적 태도’로 비쳐지며 여론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카터 시대의 유산, 댄버리 교도소 수감 

문선명 총재와 카터 행정부의 갈등은 결국 사법적 처벌로 귀결되었다. 카터 정부 시절 시작된 국세청(IRS)의 고강도 조사는 1981년 문 총재를 탈세 혐의로 기소하는 근거가 되었다. 비록 수감이 이뤄진 1984년은 레이건 행정부 시기였으나, 수사의 단초와 법적 논리는 카터 시절의 ‘코리아게이트’ 조사와 인권 중심의 사법 기조에서 비롯되었다.

문 총재는 뉴욕 댄버리 교도소에서 13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건이 오히려 미 보수 기독교계를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평소 문 총재와 신학적으로 대립하던 기독교 지도자들조차 "정부가 종교 단체의 자금 운용에 개입하는 것은 종교 자유를 침해하는 위험한 선례"라며 사법 당국의 잣대를 비판하고 문 총재 옹호에 나섰다.

역사의 역설

훗날 문 총재는 자서전 등을 통해 카터 대통령 시절을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회상했다. 반면 카터 대통령에게 문 총재는 자신의 외교 정책을 방해하고 보수 여론을 자극하는 ‘위험한 배후 세력’ 중 하나였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앞세운 카터의 ‘이상주의’와 공산주의 타도를 신의 섭리로 여긴 문 총재의 ‘현실주의’는 1970년대 말 미국 정가에서 가장 뜨거운 불꽃을 튀겼던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결국 지미 카터와의 대립은 문 총재에게 댄버리 수감이라는 육체적 고난을 안겼지만, 정치적으로는 미 보수 진영 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카터 정부의 압박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형성된 통일교 보수 네트워크는 이후 레이건, 부시 행정부로 이어지는 장기적인 정치적 영향력의 토대가 되었다.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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