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김황식 전 총리 강연…한일관계, 먼저 상대를 아는 것이 중요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5-11-26 19:02:51

일본은 애증이 교차하는 이웃
한일 간 불행했던 시기는 몇 년, 평화롭던 시기는 수천 년
일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황식 전 총리가 일본 프레스센터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로컬세계 = 글 ・사진 이승민 도쿄특파원] 지난 25일, 도쿄 프레스센터에서 ‘인간애가 일한・한일관계의 미래를 연다’(人への愛が日韓・韓日の未来を開く)는 주제로 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강연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과 재일한국노인의 집(고향의 집) 40주년을 기념하여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이 주최했다.

이날 강연회는 일본 프레스텐터에서 재일교포와 도쿄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윤기 ‘마음의 가족’ 이사장의 개회사와 가와무라 다케오(川村建夫) 일한친선협회 중앙회 회장의 축사로 문을 열었다.

김황식 전 총리의 강의에 앞서 고향의 집 소개 영상.

다음은 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강연 요약

일본은 애증이 교차하는 이웃이다. 때로는 경쟁하고 갈등하면서도 서로 협력하고 교류해야 하는 나라다. 국익을 위해 일본을 단편적, 감정적, 피상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깊이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을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뿌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행과 음식, 애니메이션으로 접하는 일본은 표면일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한일관계가 시작된다.

옛날에는 우리가 일본에 농사기술, 철기, 한자, 불교 등을 전수했지만 근세에는 일본이 한국에 선진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4세기경부터 일본은 백제와 긴밀한 관계를 지속했고 663년에는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막기 위해 백제에 구원군까지 보냈다.

임진왜란 후 10년도 지나지 않아 도쿠가와 정권은 조선과 평화를 원했다. 조선 조정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조선통신사를 12회나 일본에 파견했고 일본은 후하게 맞아주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불편했던 시기는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 불과 몇 년이지만 평화롭던 시기는 수천 년이었다.

일본 문학이 한국에 미친 영향이 크다. 영혼이 맑은 미야자와 겐지의 시는 마치 윤동주의 ‘서시’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시 ‘비에도 지지 않고’를 보면, ‘모든 일에 내 잇속을 챙기지 않고/ 잘 보고 듣고 깨달아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오두막집에 살며/ 아픈 아이가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 등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도 인간적이고 순수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삶이 시 속에 담겨 있다.

나의 총리시절,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는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 등 동북부 3개 현을 강타했다. 이에 즉시 한국 구조대를 파견해 생존자 구조 및 복구 활동을 지원하고 구호물품을 전달했다. 당시 한국인은 내일처럼 성금을 모아 일본에 전달했다.  순수한 인간애로 이어지는 참다운 한일관계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공군 블랙 이글스가 독도 상공을 비행했다고 두바이 에어쇼에 오키나와 중간 급유를 일본이 취소했다. 이에 한국은 이달 13~15일 도쿄에서 열리는 일본 자위대 음악 축제에 우리 군악대를 보내지 않기로 했다. 이달로 예정됐던 한일 공동 해상 수색 구조 훈련도 취소됐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영토나 역사문제는 사소한 자극에도 민족성이 앞서 발동되기 때문에 성숙된 자세와 정치적 큰 안목이 필요하다. 열린 마음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일본은 안중근 의사를 테러범으로 규정하지만 안중근은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지배하려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일이며 이런 침략행위를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3국 공동의 적으로 생각했다. 

안중근 의사는 동양 평화론을 옥중에서 집필했다. 목차를 정해놓고 집필 중 완성을 못하고 사형이 집행되었다.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였으니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당당하게 죽어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랐던 것이다. 

조사과정이나 재판 과정에서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을 설명했고,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높이 평가하고 공부하는 일본인도 많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을 배척한 분이 아니다. 한·중·일 세 나라가 협력해 서양의 침략에 대응해야 한다는 평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토를 제거한 것도 일본에 대한 적대감 때문이 아니라 일본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다. 한일 양국이 서로를 객관적으로 보고 균형 잡힌 이해를 했으면 좋겠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한·중·일 3국이 서로 협력해 공생·공존하자. 동북아 3개국이 정치, 경제, 군사 공동체를 만들고 은행과 화폐도 공동으로 구성하자는 평화사상으로 지금의 유럽연합(EU) 사상을 100년 전에 이미 주창한 것이다.

일본 출신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놀라운 건 '운'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노력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운이 찾아오도록 쓰레기를 줍고, 방 청소를 하고, 심판을 존중했다. 지금도 야구장 쓰레기를 줍는다. 기자가 왜 줍느냐고 물으니 '남이 버린 행운을 줍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결국 운도 노력에 의해 얻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일본인의 성실함과 절제, 그리고 글로벌 시대의 개방성과 도전정신을 모두 지녔다. ‘남이 버린 행운을 줍는다’는 정신을 한국의 젊은이들도 배웠으면 좋겠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가 희생된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의 무덤을 현역 총리로서 방문해 참배했다. 한일 간 좋은 일은 좀 더 부각해 줬으면 좋겠다.

김황식 전 총리는 한국의 고아 3000명을 목포 공생원에서 길러낸 다우치 치즈코 여사에 대해 “일본이 한국에 선사한 천사였다.”고 표현하면서 한일 간에 역사적인 사랑의 가교라고 했다.

일본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뿌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행과 음식, 애니메이션 등으로 접하는 일본은 표면일 뿐이다.

나는 국익을 위해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상대의 국가를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야마토 시대의 쇼토쿠 태자부터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에 이르기까지 일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물들을 골라 '일본인 88인의 이야기'를 출간했다.

1만 년 전에는 한반도와 일본이 육지로 연결돼 있어 아무 거리낌 없이 오고 가고 했을 것이다. 그동안 굴곡도 있었고 말씨도 다르게 살아왔지만 그런 것을 생각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이해하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한편 김황식 강연자는 △1948년 전남 장성 출생 △광주제일고·서울대 법학과 졸업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부장판사, 광주지법원장 △2005년 대법관 △2008년 제21대 감사원장 △2010년 제41대 국무총리 △2017년~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 △2018년~ 호암재단 이사장 △2020년~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2023년~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소통 공감 그리고 연대’, ‘국무총리 재임 중 880일의 기록’, ‘연필로 쓴 페이스북’, ‘풍경이 있는 세상’,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일본인 88인의 이야기’ 등이 있다.

강연회를 마치고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로컬세계 /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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