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로 써내려간 100세의 회화(카게에)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의 세기적 파노라마와의 만남전 열려

마나미 기자

| 2024-02-19 17:44:37

-<오사카 파노라마展> 1월 26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
▲월광의 소나타(月光の響)

[로컬세계 = 마나미 기자] 그림자 회화(카게에) 거장인 일본 작가 후지시로 세이지의 뜻깊은 전시가 열린다. 지난 1월 26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오사카 파노라마展>이 바로 그 것이다.

 

2024년 100세를 맞는 작가는 모든 인류가 이 땅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메시지를 담아 작업해 왔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한 세기에 걸친 빛과 그림자의 파노라마를 선보인다. 

특히 조선 설화를 다시 읽고 재제작한 <선녀와 나무꾼> 작품 시리즈 14점과 6m가 넘는 초대형 작품을 비롯한 200여 점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에 앞서 그는 이번 한국전이 가장 의미를 두고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전시라고 밝히기도 했다.


◆면도날 끝에서 다시 태어난 조선의 설화
후지시로는 이번 한국 전시를 앞두고 열흘에 걸쳐 <선녀와 나무꾼> 열두 작품을 새로이 제작하였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1958년에 다섯 작품을 제작하고 1973년에도 이 작품을 동화로 엮어 발행했으나, 일부 원화들의 유실됨에 따라 이번 전시를 위해 12점을 추가로 제작해 완성하였다.


1948년부터 쿠라시노테쵸우에 후지시로 세이지의 카게에가 동화로 소개되었다. 처음에는 모노크롬 작품으로 실리다 1974년부터 컬러로 연재하기 시작한 작품들은 1988년까지 40년간 총 220여 편에 이른다. 이 카게에 동화 인기로 당시 구독자 10만을 넘는 기록을 달성했고 1973년에는 잡지에 실린 카게에 동화를 모아, 「お母さんが読んで聞かせるお話_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두 권으로 삶의 수첩사에서 출판했다.


▲오사카 파노라마(大阪パノラマ)

◆모더니즘으로 이끈 후지시로의 스승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초등시절 까지 남과의 대화 보다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런 모습을 걱정한 어머니는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했을 정도였다. 선생님은 소년 후지시로 세이지가 그린 그림을 같은 반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즐거워하고, 잘 웃기도 하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해서 어머니도 안심했다고 한다.

 

후지시로는 게이오 보통부에서 게이오 대학 경제학부 예과에 입학하였다. 성적이 상위면 1년 빨리 진학할 수 있었다. 입학 후 ‘팔레트 클럽’이라는 그림 동아리에 들어갔다. 동아리방 옆은 ‘아동문학연구회’가 있었고 인형극 등을 했다. 후지시로는 이 동아리에도 들어갔다. 

 

팔레트 클럽에서 1년 선배인 이나무라 다츠하루(稲村立春)와 운명적으로 만났고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 시절 파리 유학에서 돌아온 화가 이노쿠마 겐이치로(猪熊弦一郎)와 와키타 가즈(脇田和), 고이소 료헤이(小磯良平) 등 젊은 화가들은 신제작협회라는 미술단체를 만들었다. 이나무라는 이노쿠마에게 후지시로의 그림을 보여주며 “후지시로가 더 잘 그려요. 선생님, 한 번 보세요. 굉장하지요. 그리고는 인형극 이야기도 하며 후지시로가 만든 인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17, 18살의 후지시로는 이노쿠마와 와키다를 스승으로 삼았다. 

 

▲요코테의 눈축제(横手の雪祭り)

이노쿠마에게서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과 참신한 색감을, 와키타에게서는 순수함과 부드러움을 배웠고 그의 화풍은 단번에 사실주의에서 모더니즘으로 거듭났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돌아왔던 이나무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전쟁이 끝난 후 후지시로는 이제야 이 평화로움 속에서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전쟁 중에는 배급이 돼 쉽게 구할 수 있던 물감을 전후에는 아무것도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빛과 그림자만 있으면 가능한 카게에가 시작되었다.
 

◆거장의 탄생을 예고한 흑백의 시대
1947년 종전 후 대학을 졸업한 후지시로가 입사한 첫 직장은 영화배급사였다. 회사 일도 하면서 그다음 해에는 쿠라시노테쵸우(暮しの手帖_삶의 수첩)이라는 여성지에 카게에 연재를 시작했다. 

당시에 지면에 처음 실려 공개된 게 [완두콩 다섯 알]이다. 이땐 물자 부족으로 철사나 굴러다니는 물건을 이용해 카게에를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초토화가 된 도쿄에서 구할 수 있던 것은 골판지나 전구 따위가 전부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정전이 잦았던 시절, 그는 카게에를 제작하며 어둠 속에서 자신만의 빛을 찾았다. 

그는 십 대에 이미 일본의 독립미술협회전, 국화회전, 춘양회전, 신제작파전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지만, 카게에에만 전념하였다. 이후부터 그의 작품 활동은 상업과 예술의 모든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지기 시작했다.

◆종합예술인으로서의 후지시로
NHK 일본 공영방송국 개국 방송 시, 그의 극단 <모쿠바자>가 전속으로 채택되었고, 1960년대 비틀즈가 최초 아시아 투어를 마친 부도칸에서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 케로용이 등장하는 <케로용 쇼>가 열렸다.

소니의 전신인 도쿄통신공업의 광고에는 <포도주 병의 여행> 카게에가 사용되었고, 날씨 예보, 공익광고를 비롯한 상업광고에도 그의 작품이 등장하였다. 쿠라시노테쵸우의 표지와 내지에도 그의 작품이 사용되었으니 작가로서 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고도성장기 일본 대중문화예술 발전의 중심에는 후지시로 세이지가 있었다.

그림자 회화 장르를 개척한 후지시로 세이지는 일본에서 100회 이상의 순회 전시 개최, 그림자극의 상연 횟수만도 2,000회가 넘는다.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된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그림자극으로 상연한 작품은 일본 문부과학성이 공인한 특별 선정작이 되었다. 이번 <오사카 파노라마展>은 그의 역사적 발자취를 담은 작품들과 그가 애정을 담아 아끼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후지시로가 전시 도면도 직접 그려서 그 의미를 더한다.

거장의 탄생을 알리는 모노크롬 시리즈 <서유기>와 <목단기> 시리즈를 비롯하여 일본의 국민작가이자 세계적인 동화작가인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소재로 한 <첼로 켜는 고슈>, <은하철도의 밤>, <구스코부도리 전기>등을 후지시로의 감각으로 소개한다. 또한 우리 국민에게도 친숙한 오사카, 교토, 나가사키 등 일본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세계의 평화 개인의 평화
이번 전시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카게에 소재는 다름 아닌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들이다. 겐지동화와 만나 처음으로 카게에 작가로서 눈을 떴다고 해도 좋을 정도. 겐지의 동화는 그때까지 읽어본 것과 좀 달랐다. 단순한 동화라기보다 기도(祈禱)의 동화라고 할까, 그 바탕에 무언가 깊은 기원과 기도가 담겨있다. 

겐지 작품을 카게에로 만들 때는 특별한 감정이 든다. 한 번 읽어본 것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몇 번이나 반복하여 읽어보는 중에 마음 속에 강한 공감이 끓어올랐다고 작가가 회상할 정도다. 

겐지의 동화가 극으로도 그림으로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시절 겐지의 동생이자 겐지 연구가인 미야자와 세이로쿠의 허락을 받아 카게에 극을 상연했다. 초연은 전쟁이 끝난 바로 직후였으며 그 후로도 1,000회 이상 상연하였다. 후지시로의 카게에와 극에 있어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는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겐지 동화가 <은하철도의 밤>에 의해 기도의 동화라고 불리게 됐다면 후지시로의 카게에는 <은하철도의 밤>에 의해 빛과 그림자의 기도라는 예술관을 확립하게 되었다. <은하철도의 밤>을 소재로 한 그림책은 1983년 브라티슬라바 국제그림책원화전BIB의 최고상을, 그림자극으로는 1982년 예술제의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100세 작가가 전하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
젊은 시절에는 동화 세계와 자신의 심상心象, 풍경 등을 주로 그렸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과 지구의 아름다움에 끌리게 되었다. 각지에 시대를 초월하며 남아 있는 절과 성, 그리고 바다와 산, 강과 숲은 분명히 내가 생각해 만들어 내는 것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 더욱더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어 각 지방의 경치를 데생한다든지 카게에 작업을 했다.

 

▲鹿からもらったお嫁さん_天女

도호쿠 지방(東北地方) 지진을 실제 눈으로 보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고 거기에서 슬픔과 분노와 그리움, 인간 삶의 많은 것들을 경험한 작가는 재앙의 현실을 기록하는 작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극복하고, 위로하고 또 미래의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려가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올해로 한 세기의 삶을 맞이한 거장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사랑과 평화다. 그는 이번 전시가 한·일 양국 간의 관계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하며, 한 세기에 걸친 사랑·평화·공생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한국 관객들의 마음에 닿길 바란다는 소망을 개막식에서 피력했다. <오사카 파노라마展>은 오는 4월 7일까지 열린다. 전체관람가.  

[ⓒ 로컬(LOCAL)세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