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서 ‘조선 통신사 인연의 도시 전국교류회 2017’ 열려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17-11-20 17:38:11
▲국서교환식을 마치고 정사역의 하태윤 총영사(오른쪽)와 일본 무사역의 아메노모리 후손 아메모리 세이지 씨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승민 기자. |
[로컬세계 이승민 특파원]일본 에도시대의 외교사절단 ‘조선통신사’와 인연 깊은 자치단체 등이 모이는 전국교류회가 18~19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교토시에서 열렸다.
첫째날은 교토의 롬시아타에서 조선통신사를 내용으로 하는 강연회, 합창, 창작 무용극 등 실내에서 공연을 가졌고 둘째날은 조선통신사를 재현한 가장행렬과 국서교환식, 축하공연 등이 진행됐다.
▲조선통신사 가장행렬진이 교토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
▲정사를 뒤따라 행진하는 조선통신사 행렬. |
교토시와 민단 교토본부 등이 주최한 이 행사는 재일교포 180명이 가장행렬에 참가했다. 교토시 국제교류회관에서 출발한 이 행렬은 대로를 따라 행진했고 많은 교토 시민들이 나와 손을 흔들어 환영했다.
가장행렬 행진은 1시간 정도 진행, 국제교류회관에 돌아와, 조선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도쿠가와의 답서를 받는 국서교환식을 했다.
▲19일, 교토시 국제교류회관에서 국서교환식 재현, 홍포 입은 정사와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국서를 교환하고 있다. |
조선왕을 대신해 국서를 전달하는 정사(수석 사신) 역할을 맡게 된 하태윤 주오사카 대한민국 총영사는 국서교환 식사에서 “도쿠가와 2대 히데타다(秀忠)와 조선통신사가 이곳 교토의 후시미성(伏見城)에서 국서가 교환된 지 올해로 400주년을 맞아 참으로 뜻깊은 날이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왕래하던 200년 동안은 조선과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시대를 가져왔다. 파벌과 분쟁이 만연한 이 시대야말로 조선통신사가 가르쳐 준 평화교류 정신을 되새겨볼 때다”고 말했다.
▲한국예술단이 한복을 입고 장구를 치면서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
▲일본예술단이 조선통신사가 왔다는 축하 춤을 흥겹게 추고 있다. |
국서교환식에 이어 축하무대가 열렸다. 즐거운 한국의 춤과 노래가 펼쳐졌고 흥려운 노랫가락이 울려 나는 앞마당에서는 한국의 전통 먹거리 시장이 열렸다. 한국의 전통차나 막걸리가 인기가 있었고 호떡과 떡볶이를 사려는 행렬도 길었다.
특히 이번 행사를 통해 조선통신사의 공로자로 아메모리 호슈(雨森芳洲)가 집중 조명됐다. 아메노모리 호슈(1668-1755)는 22세에 대마도 번의 관리로 파견되어 1755년 88세로 사망할 때까지, 66년간을 대마도와 부산을 오가며 외교관 생활을 했다.
특히 그는 최초의 조선어 회화책 교린수지(交隣須知)와 한글과 일본어를 병기한 조선어 입문서 전일도인(全一道人)을 출간했다.
1727년에는 최초의 "조선어학교"를 대마도에 개설해 조선어 통역관을 양성하면서 40여 년간 조선통신사 관련 일을 도맡았다. 제8회, 제9회 조선통신사 방일 시에는 일행으로 참가 대마도에서 에도(도쿄)를 2번 왕복했다. 또 그는 1720년 조선 경종 즉위식을 축하하는 일본 사절단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아메노모리는 그의 저술을 통해 “국가 간의 교역은 서로 속이지 않고, 싸우지 않는, 성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조선의 풍습을 담은 그의 산문집에는 “나라가 귀하고 천함은 그 나라의 군자와 소인배가 많고 적음과 그 나라의 풍습이 좋고 나쁜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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