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나라 상속세제도 이대로 좋은가?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24-09-30 15:56:07
▲ 신재영 칼럼니스트 |
◆상속세 ‘유산세 제도에서 유산취득세’로 바뀌면?
최 부총리는 이같은 과세 방식을 제시하면서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상속세 과세 방식을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 7월 발표되는 세법 개정안에는 상속세 개편안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개편의 취지는 상속인의 세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고령화 되어 있는 중소기업인의 가업 상속을 원활하게 촉진하는 한편 대주주 오너에게 적용되는 할증과세 최고 60%의 징벌적 과세도 완화 시킨다는 취지다.
우리나라 상속세 과세표준을 살펴보면 OECD 국가 중 일본 다음으로 높은 세율로 짜여 있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지만 대주주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할증률 20%를 계상하면 실제 세 부담은 상속재산의 60%로 높다. 이처럼 획일적 할증기준을 적용해 경영권 가치에 세금을 더 물리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그래서 붙어진 불명예는 ‘갈라파고스 세제’로 비판받고 있다.
상속재산 절반이 넘는 세금을 현금으로 내려면 온갖 문제들이 발생한다. 물려받은 지분을 담보로 잡히고 대출을 받거나, 유산 재산을 물납으로 대신 내는 경우도 자주 발행한다. 넥슨의 창업주가 사망 후 유족이 세금을 낼 현금이 없어 주식을 평가해 세금을 대신 납부했다. 이른바 물납이다. 물납 주식의 덩치가 커 한때 정부가 이 회사의 2대 주주가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고 재벌가인 삼성그롭 오너 일가의 상속세 에피소드 역시 역사에 남을만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최대 재벌가로 알려진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오너 일가에 과세된 상속세는 12조원이 었다. 우리나라 상속세금 중 역대 최대규모다. 아무리 돈 많은 재벌이지만 현금 12조원을 감당하기는 힘겨웠다. 딜레마에 빠진 삼성 재벌가는 보유주식을 팔고 그림, 골동품 등을 내다 팔았지만 2조6천억원 밖에 마련 못했다. 결국 세금을 다 내지 못하고 5년 분할 납부로 사태를 가까스로 수습했다. 또한 한미약품은 상속세 때문에 모녀와 형제간에 경영분쟁이 일어났으며, 아직 결말이 나지 않은 미완의 모녀-형제간의 싸움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처럼 재벌 오너가의 주식 대량 매각은 주가를 떨어뜨린다는 비판과 함께 개미투자자들에게는 좋지 않은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세 연구 전문가들은 최 부총리가 제시한 유산취득세 과세제도는 현행 징벌적 상속세 과세제도를 어느 정도 완화하는 것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베비부머 세대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상속세 과세제도 개선에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상속세 문제는 베이비부머 세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최근 몇 년 사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상속세를 부담하는 납세자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상속세 개편을 약속했고, 민주당에서도 ‘중산층 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 제도로 바뀌면?
그렇다면,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바뀐다면 납세자가 부담해야 할 세액은 어떻게 변하며, 세 부담은 얼마나 줄어들까.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유산취득세의 경우 기초공제와 일괄공제를 폐지하고 분할된 상속재산에 대해서만 상속인별 인적공제를 적용한다면 상속재산 규모에 대비 상속받을 자녀가 많을 경우 세부담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자녀가 적을수록 세 부담이 많아지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현행 유산세 방식에서 자녀 4명이 1인당 5억원씩 상속받을 경우 총 부담세액은 6억4000만원이지만,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면 1인당 5억원씩 상속받을 경우 부담세액은 3억6000만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단순히 세율만 놓고 보더라도 유산세는 자녀 2명이 부모로부터 20억원의 아파트를 물려받으면 40%의 세율을 적용받지만,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면 1인당 10억원으로 계산해 세율이 30%로 낮아진다.
이렇듯 누진세율인 상속세 체계에서는 물려받는 재산이 많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따라서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것이 재벌이나 고위직에 혜택이 커져 ‘부자감세’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유산취득세 개편 이후에도 아이를 키울 형편이 좋은 자산가일수록 자녀의 수가 늘어나 혜택을 더욱 누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속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증가는 일정한 부가 있는 상태에서 더 용이하다는 점에서, 적어도 부의 세대 간 무상 이전으로 일어나는 사회적 불공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목이다. 1997년 인적공제가 일괄공제 5억원, 배우자공제 최소 5억원~최대 30억원으로 개편된 후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국세청 입장에서는 한 번의 행정으로 끝날 행정이 인원별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세무행정의 측면에서는 다소 복잡해지는 측면이 있고, 여러 명에게 물려줄수록 세 부담이 감소하므로 위장 분할 신고 등 악용 가능성이 있어 이를 검증하는 데 드는 비용도 커진다.
유산취득세는 대체로 ‘세부담’이 낮아진다는 장점을 가지는데, 출산율이 저하되면서 과거와 달리 상속인의 수가 적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실증분석에 따르면 상속재산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상속인의 수가 적을수록 유산취득세가 유산세 방식보다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와 관련 최 부총리는 상속인별 공제에 대해서는 일괄 공제(5억원)를 폐지할 필요가 있고, 배우자·자녀 등 상속인별 공제를 따로 설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속세 세제개편 세대별 의견차 커 난항
최근 상속세 문제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20~30대는 경제 자유주의 원칙론을 주장하며, 부의 대물림을 차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때문에 현행 과세제도를 바뀌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거나 세율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반면 40, 50, 60대의 기성세대는 상속세율 이 높으면 누가 근검절약하며 회사를 키우려 하겠느냐며 상속세율 인하에 동조했다.
어쨌거나 상속세를 둘러싼 설왕설래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십년 전 만들어놓은 상속세 제도가 우리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상속세 과세표준은 5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내년부터는 4단계로 바뀌어 과세표준액이 1억원 이하에서 2억원 이하로, 최고 세율도 30억원 초과 50%에서 40%로 다소 낮아졌지만, 그래도 상속세율은 여전히 높다. 내 가족에게, 내 자식에게 무언가를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서울시내 10억원 미만의 아파트를 찾기에는 쉽지 않을 정도다. 국민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경제환경, 사회환경도 판이하게 변화하고 있다.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 세제 정책 역시 역동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치권에서 젊은 세대의 표를 의식해 낡은 제도를 방치하는 것은 국가 발전의 선순환에 역행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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