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옥천군 감사실장, 이장 비리 촉발한 주민동의서 “상황에 따라 요구할 수도 있는 것” 초법적 발언

전상후 기자

sanghu60@naver.com | 2021-05-28 15:48:49

태양광업자 공갈.협박 이장비리의혹 감사 미적 “권한 밖” 미온적 태도 일관

‘옥천 이장 임명 규칙’ 제3조 ▲개인 영리행위 등에 권한 남용 ▲주민들로부터 뇌물 또는 금품수수 ▲사회적 물의로 지탄의 대상, ‘즉각 해임’ 가능

구비서류 아닌 ‘주민동의서’ 제출 놓고 피해업체-옥천군 담당부서 간 말 달라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 위치한 군청사 전경. 옥천군 이원면 G리 이장과 직전 노인회장 등 마을주민 여러 명은 개발행위 관련 부서와 군수실에 몰려가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면 노인회장의 논(태양광발전이 불가능한 절대농지)이 지가가 내려가는 등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에 허가해주지 말라”는 민원을 제기해 결국 요구조건을 관철시켰다.

충북 옥천군 기획감사실(감사실)이 집단위력을 이용한 땅 강매 및 금품수수 등 상상하지 못할 이장 비리의혹이 불거졌는데도 ‘먼 산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노경 옥천군 감사실장은 ‘옥천 이장 금품수수 및 땅 강매 의혹사건’에 대해 “동향파악 차원에서 (면장으로부터)보고는 받을 예정이지만, 저희들(감사실)이 정리(조치)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 권한이 아니다”라고 27일 밝혔다.


박 실장은 이날 감사실장실에서 가진 대면인터뷰에서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이장에 대한 임면 권한이 있는 읍·면장에게 내용을 파악해서 보고해달라는 정도로 얘기해놓은 상황이다”며 “형사적 관련 문제는 저희가 못하는 것이며, 발생할 수도 있는 민사적인 상황이 처리된 이후에 우리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에 대해 조사도 안 해보고 ‘(감사를)할 수 있다 없다’고 미리 판단하는 것은 ‘예단’하는 것 아니냐”라고 되묻자, “지금부터는 답변을 하지 않겠다. 몰아가는 것 아니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이어 기자가 “(태양광 개발행위 담당) 공무원들이 법적 필수사항이 아닌 주민동의서를 받아 오라는 요구를 한 게 사실이라면 그건 감사 대상이 되는 거냐?”고 묻자, “공무원이 요구했는지 여부와 어느 절차에서 요구했는지 그런 것에 따라 틀리지 않나. 상황에 따라서는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죠”라는 충격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박 실장은 뒤이어 발언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그 내용이 파악이 안 됐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렸다”라고 첨언했다.
 

“파악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주민동의서라는 것은 법에 없는 것’인데”라고 재차 되묻자, 그는 “다른 어떤 위원회(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서 어떤 것을 요구할 수도, 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주민동의서’ 때문에 촉발했다.

▲옥천군 이원면 G리 북동쪽 마을 진입로에는 콘크리트 도로 바닥에 주민이 ‘공사차량 진입금지’라고 붉은 글씨로 적어 놓은 문구가 선명하다.

문제가 된 옥천군 이원면 Y리 일대에 태양광 발전사업 관련 개발행위 허가신청을 한 업체는 주민설명회를 열고 주민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약점 때문에 이장과 마을주민들이 위력을 이용해 요구한 마을발전기금 3500만원과 농로파손에 대비한 5000만원짜리 이행보증증권 요구를 지난달 주민설명회 때 모두 수용했다.
 

또 폭 1m, 높이 1m 규모의 U자 우수 배수관 350m 증설 요구도 받아들였다.
 

업체는 특히 이장과 직전 노인회장이 합세해 “공사장 진입로를 막겠다. 공사를 못 하게 하겠다”라는 공갈·협박에 못 이겨 태양광사업이 불가능한 직전 노인회장의 절대농지(논) 949평을 7580만원에 강제로 매수(계약금 40%, 3000만원 기지급)해야 했다. 법치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전지역 태양광 발전 업체인 E사는 지난 수개월 동안 이 동의서를 받기 위해 온갖 위법, 부당한 요구를 다 수용했지만 주민 간 내분으로 인해 지금까지 동의서를 손에 쥐지 못했다.
 

이 업체는 앞선 같은 지역의 태양광 1, 2차 개발행위 허가 때도 주민동의서를 첨부해 무난히 사업허가를 획득하는 등 지난 몇 년 간 허가관청의 요구에 따라 주민동의서를 제출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태양광 발전사업 관련 업체들의 관련 법에 없는 주민동의서 제출 관행은 대부분의 시·군 단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국적인 상황이다.
 

허가관청이 집단민원을 우려해 사업 허가신청 단계에서부터 행정편의를 위해 지역주민들의 동의 또는 합의 관련 문서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은근히 요구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태양광 관련 업체들은 “개발행위 처리 행정 부서에서 ‘주민동의서’라는 용어만 안 썰 뿐 ‘민원 발생 우려’ 등의 말을 하는데, 업체들은 이를 주민동의서 또는 주민과의 합의서 등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민원을 사전에 차단하거나 해결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라고 하소연했다.
 

옥천군의 경우 관련 허가처리과 담당 직원들은 “지역주민에게 태양광 발전사업에 대해 알리고 설명하는 절차에 대해서만 말했을 뿐 ‘주민동의서를 받아 오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라고 부인하고 있다.

▲옥천군 이원면 G리 이장과 마을주민들이 마을 인근 Y리 일대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결사반대한다는 구호를 담아 마을과 사업지 주변 6곳에 내건 현수막.

옥천군 이원면 태양광 발전사업 개발행위에 대한 도시계획심의위원회는 지난 2월 당연직 위원장인 도시교통과장 주관으로 심의위가 열렸으며, 심의 결과는 ‘보완-재심의’ 결정이 내려졌다.
 

보완 사항은 ▲주민설명회 실시 ▲심의위원회 현지 확인 등 두 가지 사항이었다.
 

태양광 업체는 지난달 28일 민원을 제기한 G리 주민 30여명이 모인 마을회관에서 사업 추진과 관련한 설명을 충실히 했다. 주민들의 요구조건을 모두 수용했다는 요지가 포함된 설명회 관련 문서를 옥천군에 제출했으나 옥천군은 재심의 일정조차 잡지 않고 있다.
 

옥천군 감사실은 이런 상황인데도 단순히 동향파악 정도 수준의 보고를 받아보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적극 행정, 적극 감사를 추구하는 최근의 추세와 정부 방침에도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를 막론하고 최근의 적극적인 감사 추세는 단순히 문제점을 파악하는 수준을 탈피해 제도개선, 정책감사, 타당성과 관련한 감사 등으로 바뀌고 있다.

수사기관 등의 형사적 조치가 끝난 후에 행정적인 조치를 하겠다는 소극적인 태도는 직무를 유기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군 감사실이 해야 할 일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판단 결과가 나오는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업무 영역이다.
 

옥천군 감사실은 지난 2월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심의 결과가 허가처리과를 통해 해당업체에 통보되는 과정에서 담당직원들의 사무처리 사항과 최근 5년 정도의 태양광 발전 관련 허가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대부분의 허가 신청서류에 주민동의서가 첨부돼 있다면 이를 LH공사 임직원의 토지 투기사건 못지 않는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해 근복적인 제도개선을 타 시·군·구에 앞서 도모해야 한다.
 

문제가 된 이장에 대해서도 긴급조사 및 감사를 실시한 뒤 해임하는 군 차원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장을 관리하는 관할 면장과 군 본청의 자치행정과에 대해서도 엄정한 감사를 실시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옥천군 이장 복무 규정’, ‘옥천군의 이장 임무와 실비변상에 관한 조례’, ‘옥천군 이장 임명에 관한 규칙’ 어느 곳에도 업체로부터 돈을 받거나 위력을 이용한 공갈·협박을 해 마을주민의 땅을 강매해도 된다는 사항은 없다.
 

‘옥천군 이장 임명에 관한 규칙’ 제3조(임명 및 해임) 3항 ▲3호 개인의 영리행위 등에 권한을 남용하였을 때 ▲6호 주민들로부터 뇌물 또는 금품을 수수하였을 때 ▲8호 이장으로서 품위손상 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해당 리 주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때 ▲9호 그 밖에 이장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등 9가지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마을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쳐 직권으로 해임할 수 있다’라고 규정돼 있다.
 

옥천군 감사실장은 이런 규칙을 무시한 채 “현재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옥천군 이원면 G리 이장과 마을주민들이 마을 인근 Y리 일대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결사반대한다는 구호를 담아 마을과 사업지 주변 6곳에 내건 현수막.

시민단체 국민공수처의 대표로서 전국적으로 왕성한 애국, 정의 구현 활동을 펼치고 있는 홍정식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옥천군 감사실장의 대응 태도를 들어보니 일개 마을 이장이 천지를 모르고 태양광 업체에게 금품을 요구하고 땅 사라고 공갈·협박을 하는 지경이 된 것이 이해가 된다”며 “옥천군은 이장 임명에 관한 규칙에 따라 우선 해당 이장을 해임한 후에 수사기관의 수사와는 별개로 신속하게 종합적인 자체 감사를 실시해 근본적인 대책을 국민과 옥천군민 앞에 밝히라”라고 일갈했다.
 

홍 대표는 이어 “옥천군 이원면 G리 이장의 뇌물 또는 금품수수, 공갈·협박 의혹사건의 예로 보아 이런 악습이 전국적인 사안인 것으로 생각되고, 그런 이장의 횡포에 대해 여러 곳에서 이미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이번 사건은 현재 전국적으로 수사가 진행 중인 LH공사 임직원 땅투기 사건처럼 국가수사본부나 검찰이 나서서 토착비리 척결 차원에서 엄정하게 수사해 관계자 전원을 엄벌에 처해 다시는 전국에서 이장 갑질 및 비리가 발생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게 이장도 살리고, 나라도 살리는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옥천=글·사진 전상후 기자 sanghu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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