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우 칼럼] 법과 정의의 부메랑-부메랑(Ⅴ)
마나미 기자
| 2026-04-20 11:10:20
자신들이 저지른 짓이 결국 부메랑이 된다는 것을 모른 채, 미국은 당장 눈앞에 어른거리는 욕심과 이익을 쫓아 달렸다. 영토를 차지하는 일과 돈 되는 일이라면 우방도 적도 가리지 않고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덮은 채 무차별한 살상을 자행하고, 손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오늘은 우방이었을지라도 내일은 가차 없이 쳐내버렸다. 만주를 중국에 할애하는 바람에 북괴의 남침으로 인한 우리 한민족의 6‧25 동족상잔 비극이 유엔군의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가기 일보 직전에 만주를 통한 중공의 엄청난 군사력이 북괴의 궤멸을 뒤로하고 한반도의 허리마저 자른다. 그런 꼴을 보고도 반성은커녕 장개석의 국민당 중국을 쳐내고 모택동의 공산당 중공과 손을 잡고 키워준 덕분에 결국 지금 미국은 중국을 힘겨워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자신들의 진주만을 무차별 공격한 일본 왕을 전범에서 제외시켜주고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비롯한 류큐제도를 선물하는 대신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731부대 연구 결과물을 손아귀에 넣은 것은 일시적인 욕심이 아니었다. 그들이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라는 껍데기를 내걸고 벌이는 전쟁이라는 것이, 단지 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힘자랑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량 살육하는 현장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전초전일 뿐이었다.
베트남 전쟁 역시 처음에는 월맹이 먼저 공격했다는 핑계로 전면전에 들어갔지만, 결국 미국이 먼저 공격을 감행했다는 소위 통킹만 사건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베트남 전쟁에서 참패를 당하고 철수했다.
이라크에 화학무기가 있다고 쳐들어가 무차별 살육을 감행했지만, 화학무기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들이 원한 것은 석유였다는 것만 증명한 채 후세인의 목만 들고 나왔을 뿐이다.
이번 이란에 대한 공격 역시 그 기본적인 속셈은 석유라는 것을 누구든지 안다. 거기에 하나 더하자면 트럼프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어떻게든 피해 보려는 전술이 깔려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내부 정보를 활용해 미국 예측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보도되고 있다. 무늬만 전쟁이지 무차별한 살상으로 얼룩진 살인극이 누군가의 돈벌이에 쓰이는 게 아닌지 의심이 가는 것은 물론 트럼프 자식들이 드론 산업에 투자하는 등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제관계는 물론 미국 내 법의 테두리가 과연 용납하는 것인지, 용납한다면 그게 정의를 향하는 법인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그렇다고 이란의 지도자들은 종교 지도자답게 떳떳하고 청렴하여 트럼프와는 다르다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첫 공격으로 비운에 세상을 떠난 이란의 지도자 하메네이의 재산이 무려 294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이미 나온 상태다. 정치하는 사람이 이렇게 천문학적인 재산을 어떻게 품게 되었는지는 말 안 해도 우리 모두 알 수 있다. 정말 그가 나라를 생각했다면, 그 돈을 자신의 사리사욕 채우는 데 쓰지 않고 나라를 위해서 무기 하나라도 더 만들었다면, 지금처럼 트럼프에게 개망신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 돈을 핵 개발에 올인했다면, 이미 핵 개발을 완성한 북한처럼 큰소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핵 말고 쥐뿔도 없는 북한도 저리 큰소리치는데 이란은 핵과 기름을 동반하니 역으로 미국 알기를 우습게 알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올바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지 않았고, 결국 그 많은 재산을 긁어모아 놓고는 미국의 폭탄 아래 산화되고 만 것이다.
미국과 줄곧 같은 배를 탔던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도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사법 리스크를 벗어나지 못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유독 그런 모습에 관심이 가는 것은, 우리 현실도 그에 못지않아 보이는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로는 인권을 지키고 올바른 심판을 구하기 위해서라지만, 수많은 논란 속에서 다수당의 이점을 이용해 만들어낸 4심제가,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집권 여당과 임기가 끝나고 나면 재판이 속행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자신들의 죄를 방탄하기 위한 법안은 아닌지 궁금할 뿐이다. 정말 떳떳하게 무죄를 확신한다면 굳이 그렇게 법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사법부를 공격할 이유가 있을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미 물 건너간 일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법이 정의와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고 돈과 권력으로 방향을 맞춘다면 그 법은 법으로서의 가치를 잃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무고한 백성을 해치는 도구일 뿐이다.
국제법이든 국내법이든 법이 정의와 같은 방향으로 향할 때 그것이 평화를 향하는 발걸음이다. 법이 입맛에 안 맞는다고 자신의 입맛에 맞추려고 하거나 법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다 보면 그 법은 결국 의미를 잃어 법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게 된다. 법이 보편적인 정의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딱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누군가를 위해서 난도질당하는 것은 결국 그 법의 테두리 안에 살며, 그 법의 보호를 받는 백성들의 권리를 난도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심사숙고해 볼 일이다.
사람이 명품이면 포대 자루를 입어도 명품이 되지만 사람이 넝마면 명품을 입어도 그 옷은 넝마가 된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명품이 되어야 진정한 명품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법이 정의를 포장하면 백성들은 그 품 안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지만, 법이 돈과 권력으로 오염된 거짓을 포장한다면 백성들은 연일 억울한 고통에 신음할 뿐이다. 법이 정의와 같은 방향을 향하면 인류를 지키는 가장 훌륭한 방패가 되지만, 법이 정의와 역행하면 그 법은 가장 흉측한 살인 도구로 인간을 파멸시킬 뿐이다. 그리고 당장은 아닐지라도, 그 법을 흉측한 살인 도구로 만든 이들에게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가슴에 꽂힌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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