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산책 ①] 모든 길은 니혼바시(日本橋)에서 시작된다

이승민 대기자

happydoors1@gmail.com | 2026-04-04 11:12:06

사절단이 마주한 에도의 첫 얼굴
기린(麒麟)의 날개, 미래를 향한 비상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입체적 풍경
고쿄(皇居)와 마루노우치의 붉은 벽돌
에도 성의 자취와 천수각의 교훈
도쿄 니혼바시. 사진 이승민 도쿄 특파원.


이승민 특파원과 <도쿄 산책>을 시작하며

본지는 봄을 맞이하여 이승민 도쿄 특파원과 함께하는 <도쿄 산책>을 선보입니다.

단순한 관광 정보의 나열을 넘어, 도시의 결을 따라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짚어내는 인문학적 탐색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본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400년 전, 에도 막부의 심장부였던 니혼바시를 시작으로, 근대화의 거점이었던 칸다와 긴자, 그리고 오늘날 가장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아자부다이 힐스까지, 로컬세계와 함께 도쿄의 속살을 천천히 거닐어 보시기 바랍니다.

길 끝에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스스의 모습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내일의 풍경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편집자 주] 

[로컬세계 = 글·사진 이승민 특파원] 도쿄 산책의 첫발을 떼기 위해 나는 모든 길의 기점인 니혼바시로 향했다. 이곳은 1603년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 도로망 정비 계획에 따라 '고카이도(五街道, 5대 간선도로)'의 기점으로 삼은 이래, 일본 모든 도로의 기준점이 된 '도로원표(0km)' 지점이다.

이곳은 단순한 지리학적 원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0년 전 이 땅에 처음 발을 내디뎠던 한 기자의 설렘과, 400여 년 전 거친 바다를 건너온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의 장엄한 행렬이 교차하는 역사의 전시장이다.

사절단이 마주한 에도의 첫 얼굴

다리 중앙에 새겨진 '일본국도로원표(日本國道路元標)' 앞에 서서 잠시 눈을 감는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통신사 일행은 에도 성에 입성하기 전 반드시 이 다리를 건너야 했다. 당시 한양에서 온 조선통신사 사절단에게 니혼바시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에게 이 다리는 에도의 번영을 상징하는 거대한 관문이었을 것이다. 다리 기둥에 새겨진 '日本橋'라는 글자는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친필이다. 막부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이 다리 아래로, 당시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물자를 실은 배들이 분주히 오갔고, 다리 위로는 보수(保守)와 평화를 갈구하던 양국의 지식인들이 눈을 맞추었을 것이다.

에도 시대 그림 우키요에(浮世絵)에 후지산과 함께 단골 소재로 등장했던 이 풍경 속에서, 나는 필담(筆談)을 나누며 서로의 문화를 탐색하던 선조들의 숨결을 느낀다. 400년 전 그들이 꿈꿨던 '성신교린(誠信交隣)'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걷는 이 길 위에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다.

기린(麒麟)의 날개, 미래를 향한 비상

니혼바시를 상징하는 청동 기린상을 바라본다. 이 기린에는 특이하게도 '날개'가 달려 있다. 전설 속 영물인 기린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이곳에서 시작되는 길이 일본 전역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길 바랐던 메이지 시대 사람들의 염원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기린상이 응시하고 있는 현재의 풍경이다. 머리 위로는 1964년 도쿄 올림픽 당시 급하게 가설된 수도고속도로가 하늘을 가로막고 있다. 경제 성장의 훈장이었던 고가도로가 이제는 역사의 경관을 해치는 존재가 되었고, 현재 도쿄도는 이 도로를 지하화하여 니혼바시의 하늘을 되찾아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성장을 위해 잠시 덮어두었던 하늘을 다시 열어 미래로 나아가려는 일본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입체적 풍경

니혼바시 주변은 지금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고 있다. 다리 인근에는 일본은행 본점과 도쿄 증권거래소 등이 위치해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금융의 중심을 이룬다. 그러면서도 에도 시대부터 대를 이어온 '시니세(老舗, 노포)' 김 가게와 칼 가게들이 최첨단 IT 기업이 입주한 유리 빌딩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공존한다.

조선통신사가 묵었던 숙소 터를 지나 현대적인 복합문화공간 '코레도 무로마치'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도쿄라는 도시가 얼마나 집요하게 과거를 보존하며 미래를 설계하는지 깨닫게 된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낡은 기록 위에 세련된 주석을 다는 식이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길'을 걷는 여행자다. 조선통신사가 그러했듯, 나 또한 이 연재를 통해 한일 양국의 마음을 잇는 작은 징검다리를 놓고 싶다. 그 첫 번째 돌이 바로 여기, 모든 여정의 시작점인 니혼바시다.

 도심 속의 섬, 고쿄(皇居)와 마루노우치의 붉은 벽돌

니혼바시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자연스레 도쿄의 심장부인 고쿄(皇居)로 이어진다. 1868년 메이지 천황이 교토에서 천도한 이래 역대 천황이 거주하는 이곳은, 거대한 해자와 육중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심 속의 섬’과 같다. 해자를 경계로 성벽 안쪽에는 침묵이 흐르는 숲이, 바깥쪽에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비즈니스의 격전지 마루노우치가 대조를 이룬다.

에도 성의 자취와 천수각의 교훈

고쿄는 15세기 중반 세워진 에도 성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대대적으로 확장된 이 성은 260여 년간 막부의 정무기관이었다. 오늘날에도 고쿄 곳곳에는 당시의 해자와 토루(土塁), 석담과 망루가 남아 에도의 자취를 증언한다.

성 안에는 천황의 거주 공간인 고쇼(御所)와 궁전 외에도 흥미로운 시설이 많다. 특히 역대 황후들이 직접 누에를 치는 '모미지야마 양잠소'는 전통을 계승하려는 일본 황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조선통신사 일행이 쇼군을 배알하기 위해 오테몬(大手門)을 통과할 때 느꼈을 위압감을 상상하며 성벽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 성의 정점이었던 천수각은 1657년 '메이레키 대화재' 이후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당시 막부는 성의 위용을 세우기보다 백성의 구휼을 우선시했고, 그 결단은 오늘날 하늘이 탁 트인 고쿄 동쪽 정원의 풍경을 만들었다.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높이를 낮췄던 역사의 역설을 떠올리며 진정한 리더십의 가치를 되새겨본다.

'다이묘 소로'에서 일본의 '여의도'로

해자를 건너 마루노우치로 발을 들이면 풍경은 급변한다. 마루노우치라는 이름은 '성벽의 안쪽'이라는 뜻으로, 에도 시대에는 유력 다이묘들의 저택이 밀집해 있어 '다이묘 코우지(大名小路)'라 불리던 최고 권력의 주거지였다.

이 땅의 탄생 비화는 흥미롭다. 1590년 입성 당시 이곳은 바다의 일부였다. 이에야스는 이곳을 매립해 오늘날의 마루노우치를 빚어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군영으로 쓰이다가 1890년 미쓰비시 그룹이 이 땅을 통째로 매입하며 현대적 개발이 시작되었다. 황량했던 '미쓰비시가하라(미쓰비시의 들판)'는 그렇게 일본 근대화의 상징인 붉은 벽돌 거리로 탈바꿈했다.

오늘날 이곳은 일본 3대 은행의 본점이 모인 금융의 심장부로, 한국의 여의도와 같은 위상을 지닌다. 1914년 완공된 도쿄역사와 1923년 개장한 마루노우치 빌딩은 100년의 세월을 견디며 거리의 무게감을 지탱하고 있다.

숲과 빌딩의 대화

빌딩 숲과 고쿄의 푸른 숲이 만나는 접점, '와다쿠라 분수공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빌딩 숲에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과 해자를 따라 달리는 조깅족들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과거의 권위(성벽)와 현대의 부(빌딩)가 질서 있게 공존하는 이 풍경이야말로 도쿄의 진면목일지 모른다.

고쿄 광장의 소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본다. 과거를 박제하지 않고 현재의 삶 속에 녹여내는 법, 변화 속에서도 지켜야 할 중심이 무엇인지를 마루노우치의 붉은 벽돌은 묵묵히 말해주고 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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