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통증이라는 스승
지차수 기자
chasoo9@naver.com | 2026-07-22 09:45:17
이명구 전) 관세청장
고등학교 시절부터 목 통증은 늘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묻곤 했지만, 돌이켜보면 원인은 무거운 책가방이었던 것 같다. 매일 어깨에 메고 다니던 가방의 무게는 한창 성장하던 어린 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학창 시절에는 목을 만질 때마다 작은 혹 하나가 만져지는 듯했다. 그 부위를 누르면 어김없이 뻐근한 통증이 밀려왔고, 어느새 그 불편함은 일상이 되었다. 통증이 없는 날보다 있는 날이 더 많았기에, 나는 그것을 특별한 증상이 아니라 원래 그런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목 통증을 없애기 위해 좋다는 방법은 거의 다 시도했다.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고, 물리치료와 마사지, 운동, 찜질도 꾸준히 해 보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얻은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살을 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먹는 양을 줄이는 것이듯, 목 통증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도 목과 어깨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치료의 시작은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몸을 무리하게 사용하지 않는 생활습관의 변화였다.
살면서 한 번도 통증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몸의 통증이든 마음의 통증이든 누구나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통증은 대개 병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몸이 보내는 가장 정직한 신호다. 그 신호를 무시하면 병은 더 깊어진다.
<필자가 AI를 활용한 이미지>입니다.
통증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중 하나가 염증이다. 흥미롭게도 한자 '염(炎)'을 들여다보면 불 화(火)가 두 개 겹쳐 있다. 불길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겹으로 번질 때 비로소 염증이 된다는 뜻일까. 몸속의 작은 불씨 하나가 꺼지지 못하고 번져 통증이 되는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마음도 다르지 않다. 작은 상처 하나가 분노와 원망이라는 불길을 만나면 어느새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으로 번져 버린다. 염증으로 인한 통증은 괴롭지만, 사실 우리 몸을 지키기 위한 필수 방어 시스템이다. 아픔을 느껴야 우리가 그 부위를 조심조심 아끼고 보호해서 상처가 덧나지 않고 빨리 회복될 수 있다.
사람마다 통증을 견디는 힘도 다르다. 같은 상처를 입어도 누군가는 담담하게 이겨내고, 누군가는 오래도록 아파한다. 요즘 인기 드라마 <김부장>의 주인공은 마치 통증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맞아도 웃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 현실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다만 통증을 감추는 사람은 있을 뿐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누구나 마음속에는 말하지 못한 상처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
통증에는 묘한 속성이 있다. 가장 아픈 곳이 모든 신경을 빼앗는다. 허리가 아프다가 오십견이 오면 어느 순간 허리보다 어깨가 더 아프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허리가 나은 것은 아니다. 더 강한 통증이 이전의 통증을 가려 버렸을 뿐이다. 우리의 감정도 그렇다. 새로운 걱정이 생기면 이전의 고민은 잠시 잊히지만 해결된 것은 아니다. 통증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뒤로 밀려난 것이다.
정민제의 『8초만 누리면 통증이 사라진다』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통증은 긴장할수록 심해지고, 몸이 충분히 이완되어야 비로소 줄어든다는 것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아픈 부위를 억지로 누르기보다 연관된 다른 부위를 자극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몸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 원리가 육체를 넘어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어떤 사람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일이 있다. 잊으려 할수록 더 생각나고, 미워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미워진다. 마음속에서 그 사람을 몰아내려고 애쓰는 순간 오히려 그 사람은 더 커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하나의 생각을 지우기 위해 또 다른 생각을 가져와야 한다. 물론 더 미운 사람을 떠올려 기존의 미움을 잊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통증은 정면으로 붙잡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때로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울 때 오래된 상처는 조금씩 힘을 잃는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랬다.
33년의 공직생활은 잔잔한 호수를 건너는 뱃놀이가 아니었다. 바람 없는 날보다 거센 풍랑을 만난 날이 더 많았다. 조직 안에서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혔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오해와 비난도 감당해야 했다. 중요한 정책을 추진하면서는 책임을 져야 했고, 선택의 갈림길에서는 혼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업무 자체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보이지 않는 긴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위기는 언제나 혼자 이겨낸 것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를 붙잡아 준 사람들이 있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준 선배, 묵묵히 함께해 준 동료, 아무 조건 없이 믿어 준 가족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천사'라고 부른다. 위기의 순간마다 나타나 등을 밀어 주었던 사람들이다.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밧줄을 잡아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다시 노를 저을 수 있었다.
공직생활은 전쟁과도 닮아 있었다. 전쟁은 용감한 사람 혼자 이길 수 없다. 전략이 있어야 하고, 함께 고민하는 참모가 있어야 한다. 전략가가 많을수록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 역시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마다 혼자 답을 찾기보다 주변의 지혜를 모으려 애썼다. 때로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작은 조언 하나가 전체 판세를 바꾸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라고 믿는다.
인생은 항해라는 말이 있다. 정말 그렇다. 배를 타지 않으면 파도도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목적지에도 도착할 수 없다. 우리는 크루즈 여행을 기대하며 인생이라는 배에 오른다. 그러나 현실은 종종 거친 파도가 밀려오는 작은 어선과 같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배가 뒤집힐 것 같은 날도 있다. 그때는 누구나 자신의 고통이 세상에서 가장 크게 느껴진다. 객관적으로 보면 다른 사람보다 작은 어려움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그 무엇보다 절박한 통증이다.
그렇다고 통증이 모두 불행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근육은 적당한 자극을 받아야 강해지고, 쇠는 쇠에 갈려야 날이 선다. 사람도 사람과 부딪히며 성장한다. 갈등이 없었다면 이해도 없었을 것이고, 실패가 없었다면 성숙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통증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찾아오는 삶의 스승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예전처럼 통증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몸이 아프면 쉬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마음이 아프면 삶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견디려 하지 않는다. 나를 살린 것은 강인함이 아니라 함께 손을 잡아 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공직생활을 마치며 가장 크게 배운 것도 이것이다. 인생은 혼자 노를 저어 완주하는 경주가 아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또 다른 날에는 누군가의 등을 밀어 주며 함께 항해하는 여정이다. 통증은 피할 수 없지만, 함께라면 견딜 수 있다. 그리고 그 통증을 지나온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믿는다. 통증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성장의 시작이며, 삶이 우리에게 보내는 가장 진실한 가르침이라고.
이명구 전) 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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