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삼성·SK ‘스타게이트’ 참여, 투자 막는 ‘금산분리’ 빗장 풀어 속도 내야
로컬세계
local@localsegye.co.kr | 2025-10-03 09:27:45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1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함께 ‘샘 올트먼(Sam Altman)’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자리에서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효자산업을 키우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금산분리’ 완화로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미국의 관세 폭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의 사기를 올리고, 새로운 성장 산업에 자금이 흘러가도록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와 정보기술(IT) 대기업이 경쟁적으로 AI 투자에 공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글로벌 현실을 고려할 때 옳은 정책 방향이다.
대한민국 국가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오픈AI와 손잡고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초대형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인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에 본격 참여하게 됐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지난 1월 21일‘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추진을 발표한 사업으로 중국과의 AI 패권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담고 있다. 2029년까지 5,000억 달러(약 702조 원)를 투입해 미국 내에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20곳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함께 오라클, 일본 소프트뱅크가 프로젝트를 주도하는데, 새로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요 핵심 파트너로 승선하면서 한·미 ‘AI 동맹’이 가일층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당당히 글로벌 ‘게임 체인저(Game-Changer)’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국내에선 ‘메타(Meta)’의 ‘AI 얼라이언스’와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엑스에이아이(xAI), 엔스로픽((Anthropic) 등 경쟁 프로젝트들보다 한 발 더 앞서 나가고 있다. 중국·유럽과 국제 AI 경쟁에서도 초격차를 유지하며 단연 우위(優位)에 선점(先占)하고 있다. ‘엔비디아(NVIDIA)’도 1,000억 달러를 투자해 ‘스타게이트(Stargate)’의 데이터센터에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공급하기로 했을 만큼 확고한 선두 주자다. 이런 스타게이트가 한국산 HBM의 입도선매(立稻先賣)를 서두르는 배경은 따로 있다. 그동안 GPU가 AI의 경쟁력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대용량 데이터를 GPU에 보내는 HBM이 AI의 품질을 결정짓는 척도가 됐기 때문이다. HBM 경쟁력을 발판 삼아 한국이 세계 최고의 AI 생태계에 진입하는 결정적 계기를 맞게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0월 1일 한국을 방문한 ‘샘 올트먼(Sam Altman)’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투자협약 의향서(LOI │ Letter of Intent)를 잇달아 체결하며 AI 동맹 출범을 알렸다. 삼성과 SK 두 회사가 앞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을 맡게 되면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할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AI 인프라의 핵심인 HBM만 해도 웨이퍼 기준 월 90만 장 정도가 필요한데, 현재 전 세계 HBM 생산량의 두 배를 넘는 규모다. 단순 계산으로도 100조 원 규모의 신규 수요가 창출되는 셈이다. 삼성과 SK는 이 밖에도 각각 경북 포항과 서남권에 오픈AI 전용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등 오픈AI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문제는 반도체 공급 요청에 적기 대응할 수 있는 생산 체계를 갖추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지난 43년 동안 우리 기업의 자금 조달을 제약해 온 ‘금산분리’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1일 이재명 대통령도 ‘샘 올트먼(Sam Altman)’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AI 투자를 위해 “독점의 폐해가 나타나지 않고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 내에서 현행 ‘금산분리’ 규제를 재검토할 수 있다.”라고 했다. 바른 판단이자 오히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다. ‘금산분리’는 1982년 도입돼 지금까지 유지되온 대표적 낡은 구각(舊殼)이자 족쇄 규제다. 기업의 신산업 투자를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었다. 대기업들이 금융 계열사를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 내부 유보금이나 외부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한 장기 프로젝트와 전략적 대규모 투자가 제약을 받았다.
당시 ‘금산분리’ 규제가 도입된 것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재벌이 은행을 사금고로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무너진 ‘빅 블러(Big Blur)’ 시대에 접어들면서 금융과 산업을 구분 짓는 ‘금산분리’ 규제는 이미 철 지난 규제로 수명을 다했다. 일본과 유럽연합(EU)엔 금산분리 규제가 아예 없고, 미국에선 지주회사가 은행을 제외한 금융사를 소유할 수도 있다. AI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이자 장사에 안주해 온 금융 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라도 ‘금산분리’는 진작에 완화됐어야만 했다. 오히려 ‘금산분리’를 풀면 첨단산업 투자에 선구안이 있는 기업들이 펀드를 결성해 국내 금융권과 글로벌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다. 그래야만 150조 원 규모의 국민 성장 펀드도 중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
금산분리 완화의 효과는 속도와 폭이 얼마나 빠르고 크냐에 달렸다. 현행법상 일반 지주사는 원칙적으로 금융업을 영위하는 국내 회사의 주식 소유가 금지되는데, 2021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지주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보유를 지분 100%인 완전 자회사 형태로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부채비율은 자기자본의 200% 이내, 펀드 조성 시에는 외부 자금 비중을 40% 이내, 해외 투자는 CVC 총자산의 20% 내에서만 허용하는 등 투자와 출자에 걸림돌이 많다. 금융권의 산업자본 투자를 막는 반대 방향의 금산분리 완화도 균형 있게 검토할 때가 됐다. 금융사는 비금융업을 영위하는 회사 지분을 15% 넘게 보유할 수 없다. 당연히 서둘러 족쇄 규제를 철폐해야만 한다. 차제에 자산운용사 설립 규제도 풀어 한국판 ‘비전(Vision)펀드’가 탄생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10조 원 이상이 들어가는 반도체 팹(Fab)과 AI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첨단산업 투자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이런 규제를 적절하게 풀어주면 모회사나 외부 투자자의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금산분리’ 규제가 첨단산업 투자의 걸림돌이라며 재계가 주장해 온 이유다.
지난 9월 22일 이재명 대통령이 뉴욕을 방문했을 당시 세계경제포럼(WEF) 의장이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 창립자인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이 한국 AI 산업에 수십조 원을 투자할 것을 한국 정부에 약속했고, 여기에 오픈AI와의 협력까지 이끌어 내면서 ‘아태 지역 AI 허브’와 ‘AI 3대 강국’으로 가기 위한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 앞으로 연구개발(R & D), 인프라 조성, 인재 확보 등에 박차를 가하려면 필요한 자금을 필요한 시점에 차질 없이 적기에 확보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자면 돈이 흐르는 물줄기를 인위적으로 막고 있는 ‘금산분리’라는 낡은 둑부터 허물어 돈이 바르게 흐르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手順)이자 첩경(捷徑)일 것이다. 글로벌 규제 환경을 비교 고찰하고 면밀하게 분석해 ‘금산분리’ 규제가 한국에만 있는 ‘한국형 갈라파고스(Galapagos) 규제’가 되지 않도록 치밀하고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독점의 폐해(弊害), 금융사의 건전성 문제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도 당연히 경계해야만 한다. 그러나 적절한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면 은행의 디지털 전환과 빅테크(Big tech) 간 경쟁에 있어서도 외려 도움이 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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