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우 칼럼>고조선과 진국(辰國; 삼한), 동·북부여, 고구려의 상관관계에 의한 만주의 영토권(제21회)

조원익 기자 wicknews1@naver.com | 2020-05-27 10:4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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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고조선과 동·북부여와 고구려와 진국은 서로 같은 민족으로 연결의 고리가 끊어짐 없이, 만주와 한반도에서 건국하고 번창하며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나라들이다. 신조선이 쇠잔하던 시기에 동명왕이 신조선의 소국 탁리국으로부터 와서 부여를 통치하며 생활터전으로 삼았다. 그 후에 부여가 강성해지면서 동부여와 북부여로 나뉘어 여러 소국을 거느리고 삼조선이 연맹을 이뤘던 고조선의 신조선, 번조선, 말조선과 병립했던 것이다.

 

그리고 동·북부여의 분리보다는 조금 늦게 부여의 소국 중 하나인 졸본부여에서 고구려가 건국된 것이다. 또한 동·북부여가 고구려보다 먼저 멸망하였지만 이민족(異民族), 특히 중국의 한족(漢族)에게 멸망한 것이 아니라 같은 한민족(韓民族)인 고구려와 병합하였다. 아울러 진국 역시 고조선의 삼조선 중 하나인 말조선이 마한으로 국호를 바꾸고 그 맹주로 자리 잡은 나라다. 결국 고조선, 부여, 고구려는 진국과 함께 고조선의 적통을 이어 역사와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나라들이라는 것이 그 진실이다.

 
특히 한반도의 중부 이남에 자리잡고 있던 진국이 고조선의 적통을 계승한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은 우리민족이 만주의 문화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주 전체를 생활터전으로 삼고 지배했던 민족이 바로 남삼한이라 불리는 진국의 구성 민족과 같은 민족인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국의 적통을 그대로 계승하여 지금까지 같은 영토에서 생활하고 있는 민족과 나라가 바로 우리 한민족이 생활하고 있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전쟁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정한 영토를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런 전쟁 중에서 가장 무서운 전쟁이 종교를 포함한 문화전쟁이다. 눈에 보이는 유형문화는 서로의 교류에 의해서 융화될 수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문화, 특히 관념문화는 좀처럼 융화되기 힘든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들의 관념문화를 해치려 한다면 전쟁도 불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관념문화의 뿌리는 영토 안에서 숨 쉬고 있는 영토문화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민족은 만주에서는 고조선을 시작으로 동·북부여와 고구려로,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진국으로 이어지는 문화생활을 영위함으로써 만주와 한반도에서 동일한 문화를 개척하여, 역사와 문화의 단절 없이 이어온 민족이다.

 

그리고 지금도 만주의 곳곳에서 발굴되는 고분이나 기타 유적들은 한반도의 그것과 동일하다. 만주와 한반도에서 생활하던 민족이 같은 민족이므로 만주와 한반도에 동일한 영토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영토문화의 문화주권자가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영토문화의 실체를 분석함으로써, 본 칼럼 제2회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토문화의 실체를 분석함으로써 그 영토의 문화주권자를 규명하는’ 영토문화론을 근거로 ‘영토문화를 기반으로 한 문화주권자가 영토권자’라는 문화영토론에 의해서 얼마든지 만주의 문화주권과 영토권을 주장하고, 또 소유할 수 있는 민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연합국은 힘의 논리에 의해서 만주국을 해체하고 그 영토를 불법적으로 중국에 귀속시켰다.


필자가 수차 언급한 바와 같이, 만주국이 패전국 일본의 어용국가라고 할지라도, 패전국에게 군사적 이익을 제공했기 때문에 처벌 받을 전범이 있다면 처벌하는 것이야 승전국의 권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라를 해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승전국의 깃발아래 또 다른 침략을 저지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연합국들이 만주국을 해체하고 그 영토를 중국에 넘겨주기 바빴다. 그 이유는 본 칼럼 제1회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연합국간에 맺어진 밀약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병사 5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가며 점령한 오키나와에 해병대기지를 건설하고, 소련은 일본과 끊임없이 지배권 다툼을 하던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접수하고, 영국은 유럽제품의 아시아 시장 진출의 문 역할을 해 줄 홍콩을 중국으로부터 조차하는 대신에 만주는 중국에게 넘겨준 것이다.


연합군이 문화에 의해 그 영토권자를 판단하여 조치한 것이 아니라 문화와는 별개로 동북아의 영토를 난도질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다보니 류큐제도를 영토로 생활을 영유하다가 1879년에 일본에 병탄된 류큐국과 홋카이도와 사할린, 쿠릴열도를 영토로 생존하다가 1869년에 일본에 병탄된 아이누족은 독립을 못한 것이다. 그리고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포함한 류큐제도는 패전국인 일본영토로 인정해주고 만 것이다. 그 바람에 1869년에 일본의 판적봉환에 의해 일본이 강탈한 우리 한민족의 영토인 대마도 역시 일본영토로 잔존하게 된 것이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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